한때 소현세자가 인질로 있던 심양(瀋陽). 이곳에서 조양(朝陽)까지 300여㎞는 완행 버스로 9시간이다. 버스 안에 3명, 2명 좌석을 두 줄로 놓고 그 사이에 나무판을 깔아 실제로는 6명이 나란히 앉는다. 버스 안에서 쉴새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목이 가버리는 건 순간이다.
심양을 떠나 서쪽으로 50여㎞쯤 가니 요하(遼河)가 나온다. 요하는 7세기 당나라 때 쓴 '수서(隋書)' 등 중국 자료에 고구려의 서쪽 국경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의 요하가 수서에서 말하는 그 요하인지는 의문이다.
낙양·서안을 수도(首都)로 삼고 살던 고대 중국인들에게 요하는 글자 그대로 '머나먼 강'이란 뜻이었다. 중국 고대서 '수경주(水經注)' 같은 책을 보면 수서에서 말하는 요하는 현재 중국의 요하보다 훨씬 서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한·중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요하는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가 북방의 강자로 등장한 서기 10세기 이후 붙은 이름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고조선의 국경이라는 패수가 현재의 대동강이 아닌 것처럼, 현재의 요하 또한 고구려의 서쪽 국경이 아닌 것이다.
마침내 도달한 조양은 대릉하(大凌河) 상류에 위치해 있다. 대릉하는 고조선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다수 출토된 곳이며, 조양은 고조선이 전국칠웅(戰國七雄) 중의 하나로 성장하는 연(燕)나라에 밀려 동쪽으로 퇴각하고 난 후 연나라의 수도가 된 곳이다.
조양에서 서남쪽으로 40여㎞ 떨어진 오호산(五虎山) 자락의 깎아지른 절벽 위에 10만년 전 구석기 유적이라는 비둘기 동굴(?子洞)이 있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만으로 100일을 버티려 애쓰던 단군 사화(史話)를 생각나게 하는 그 태고의 터널을 빠져 나오니, 절벽 아래로 바로 대릉하가 흐른다. 대륙의 산을 자르고 벌판을 가르며 흐르는 대릉하를 보면 남의 것이 된 대륙에 대한 아픔이 불현듯 강렬하다. 요하를, 대릉하를 뒤로하고 쫓겨 들어온 반도. 그나마 남북을 가르고 동서로 갈라 원수처럼 싸우는 현실이 대륙의 주인이었던 선조들 앞에 새삼 민망하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