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차일드(벨기에 프랑스·월드시네마)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는 손이나 머리가 아니라 어깨로 영화를 만든다. 그들은 카메라를 어깨에 멘 채 곤경에 처한 인물 주위를 하염없이 맴돈다. '로제타'에 이어 다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따낸 '더 차일드'에서 핸드헬드 카메라가 담아낸 것은 아이를 낳아놓고 팔아치운 뒤 후회하는 부랑아의 내면. 한 눈 팔지 않고 찍고 또 찍으면 진실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우직함이 끝내 관객 가슴에 길쭉한 대못을 박는다. 차이밍량의 '애정만세'가 그랬듯, 1분 35초의 롱테이크에 한 사람의 눈물을 꼼짝 않고 담아내는 라스트신 여운이 무척 길다.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녀의 정부(영국 프랑스·영국영화특별전)
피터 그리너웨이는 영화사의 기인이고 현대영화의 전위(前衛)다. 숫자 강박을 드러내는 지적 유희와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 새 매체에 끝없이 도전하는 실험정신으로 요약되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근래 들어 점점 더 형식적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올 부산에선 5편의 그리너웨이 작품이 상영되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1989작인 이 영화. 어느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섹스의 어두운 이야기를 서로 다른 색채로 공간마다 특성을 부여하는 탁월한 미감에 담았다.
호텔 르완다(남아공 영국 이탈리아·월드시네마)
1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르완다 내전 당시 1000여명의 생명을 구한 '르완다의 쉰들러' 이야기. 위험을 무릅쓰고 투치족 피난민들을 자신이 일하는 호텔로 피난시킨 후투족 호텔 지배인의 실화를 담았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남'을 도운 한 남자의 용기가 가슴에 오롯이 남는 작품. 돈 치들의 절제된 연기가 빛을 발한다.
히든(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월드시네마)
'퍼니 게임' '피아니스트' '늑대의 시간'으로 이어지는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 목록은 노쇠한 유럽 영화계에서 유독 형형하게 빛난다. 유복한 삶을 누리는 남자가 몰래 촬영된 비디오테이프 때문에 고통받는다. 전형적 스릴러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중산층의 위선과 피해의식 속에 도사린 이기심을 고발한다. 갑자기 비명이 터질만큼 끔찍한 장면 하나가 들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 그것은 하네케가 평온으로 위장된 세상의 권태를 찢어발기는 방식이다.
천국을 향하여(팔레스타인 독일 프랑스·월드시네마)
자살폭탄테러의 희생자 이야기는 자주 영화화됐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죽음을 훈장처럼 수여받는 사람들에게 삶은 어떤 무게를 지닐까. 차량정비공인 두 팔레스타인 청년이 다음날 텔아비브에서 자살폭탄공격을 단행할 '영광의 순교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는다. 팔레스타인 출신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은 영웅과 테러리스트로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인간폭탄'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관찰한다.
유 앤 미 앤 에브리원(미국·크리틱스 초이스)
세상은 거대한 불협화음. 택시기사 크리스틴이 구두가게 점원 리처드와 교감을 확신하고 다가갔다가 거절당할 때, 소통은 풀리지 않는 암호의 교환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런 충돌이 빚어내는 굴곡진 지형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관계에 무슨 공통분모가 그리 필요하냐고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웃으며 묻는다. 그 웃음이 따뜻하다. '숏 컷'처럼 10여명의 주인공들이 얽혀가며 저마다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만덜레이(덴마크 스웨덴 미국 프랑스·월드시네마)
'도그빌'에 이은 라스 폰 트리에의 '미국 (비판) 삼부작' 두번째 작품. '도그빌'에서 수난을 겪었던 그레이스가 미국 앨러배머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캐릭터는 그대로지만 니콜 키드먼 대신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가 연기했다. 여전히 노예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1933년의 면화 농장 '만덜레이'가 주무대. '도그빌'처럼 최소한의 소도구만 갖춘 연극적 세트 위에서 잔혹하게 뼈만 발려낸 정치 우화가 신랄하게 펼쳐진다. 관객 면전에 대고 독설과 조롱을 쏘아붙이는 듯 자신만만한 폰 트리에 태도가 여전한 논쟁적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