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엽(48) 八단이 마침내 첫 타이틀을 땄다. 83년 입단 후 무려 22년 만이다. 만45세 이상 노장들만 출전하는 제한기전 우승이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서봉수 등 왕년의 '한 칼' 5명이 그 앞에서 줄줄이 무릎을 꿇었다. 21일 장수영과의 결승 최종국서 승리, 제5기 프로 시니어기전을 품에 안은 김동엽은 벗어진 머리 아래로 '허허ㅡ' 하며 웃음을 흘렸다.
16살의 늦은 나이에 처음 바둑 돌을 잡은 뒤 독학으로 프로가 된 흔치 않은 케이스. 20살이 돼서야 1급에 올랐지만, 입단 노크 단 세 번 만에 관문을 뚫은 것을 보면 비범한 기재였다. 부산서 궁핍한 가정의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바둑에 전념할 형편이 못 됐다. 공사판 막일, 열쇠수리공 등 닥치는대로 몸을 던지며 생활비를 벌었다. 온실 속에서 엘리트 교육으로 단련한 요즘 어린 프로들로선 상상도 못 할 얘기들이다.
바둑으로 처음 목돈(?)을 만져 본 것은 88년 벌어졌던 '태풍대결' 때였다. 이창호 오규철 김원 二단(당시 단위), 정대상 三단 등 프로 유망주 8명에 최정예 아마 8명이 뒤섞여 토너먼트로 진행된 이벤트 기전서 우승한 것이다. 결승서 같은 프로 三단이던 유창혁을 꺾자 "야구 감독이 바둑도 두느냐"고들 했다. 그만큼 김동엽은 철저한 무명이었다.
요즘엔 안양서 살며 등산과 마라톤에 흠뻑 빠져있다. 매번 4시간을 넘겼지만 풀 코스를 네 번이나 완주했다. 아직도 미혼.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박영훈 홍민표 박지은 이재웅 등이 그의 손을 거쳐간 스타들. "펄펄 날더군요. 대견하지요 뭐." 그는 또 '허허ㅡ' 하고 웃었다. 안분지족(安分知足). 난생 처음 탄 '거금' 1500만원은 어디다 쓸까. 궁금해 못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