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이 서늘하다. 예로부터 "가을 전어는 머리에 깨가 서말"이라 했다. 가을이면 얼마나 맛이 좋은지 돈은 생각지 않고 먹는 다하여 전어(錢魚)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전어의 고장 광양을 찾아간다. 섬진강 오백리 물길이 바다와 몸을 섞는 망덕포구는 '하늘이 내려준 복있는 곳'이었다. 제철소가 들어서기 전에는 먹이가 풍부하여 각종 물고기와 패류가 무진장 나오는 황금어장으로, 부드러우면서 쫀득한 생선은 명물로 알려져 왔다.
뼈를 발라내고 나붓나붓 썰어낸 전어는 흡사 시누대처럼 날렵하다. 달빛에 반들거리는 은물결과 묵은 기왓장 빛깔이 섞인 생선살이 접시에 수북하다. 한 점 입에 넣고 자근자근 씹으면 특유의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싸, 왜 전어를 참깨에 비교했는지 알 것 같다.
싱싱한 전어는 비린내도 없다. 깻잎에 가지 튀김을 함께 싸 먹으니, 튀김의 고소함과 전어맛이 어울려 별미이다.
주인이 권하는 대로 2년 묵은 매실김치에 싸 입에 오물거리며 사각거리는 김치와 날창 날창한 전어살이 주는 맛의 변화를 음미한다. 가지 튀김과 김치 등 부재료의 배합에 따라 맛이 다르다.
푸짐한 회를 먹다 젓가락질이 느슨해지면 새콤달콤한 초무침으로 무쳐준다. 전어 눈알이 하얀 것을 보니 잘 구어졌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가던 며느리가 돌아온다" 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구울 때 지글거리는 소리 또한 청각을 자극한다. 기름이 많은 전어를 석쇠에 구우면 기름이 빠져 담백한 맛을 돋군다. 전어의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으로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 한방에서는 이뇨와 보위·정장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노릇한 조밥은 윤기가 흐르고, 백합국은 내장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일행인 학생에게 회맛을 물으니 미소 짓고 바다만 바라본다. 비릿한 생선회를 즐기려면, 생의 바람을 견디어내는 연륜이 필요한 것일까!
하나로횟집(김영길·44)은 대를 이은 35년의 세월속에 광양망덕포구의 맛을 지킨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몸은 포구의 바람결에 맡겨두고 석양의 부신 햇살이 펼쳐놓은 '빛의 제국'에 취해 있다. 동쪽에는 파도 치면 나비가 춤추듯 보인다는 무접도(舞蝶島), 앞에는 공처럼 둥글게 솟아있는 푸르른 배알도, 건너 태인을 거느리고 한 점 풍경이 된다.
전어회·전어구이(각각 소 2만5000원-2~3인분, 대 3만5000원-4인분). 하나로횟집은 광양시 진월면 망덕포구에 있다. ☎(061)772-3637.
(전남과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