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아직 빗물로 밥을 해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라의 수치예요." 김환주(58) 서울남부수도사업소장은 동료 직원 4명과 함께 쓰러져 가는 이씨 할아버지의 집을 돌며 수도관을 어떻게 설치할지 궁리를 했다. 죽죽 금이 간 집의 벽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았다. 이들은 "수도관을 묻기 위해 땅을 파면 집이 무너질 염려가 있다"며 수도관을 마당 한구석에 설치해주기로 약속했다.

"내가 6·25 참전으로 국가유공자 표창을 받은 것보다 오늘이 더 기쁜 날이에요." 수도사업소 직원들의 손목을 꼭 쥐며 계속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의 깊게 팬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빗물로 밥을 해 먹은 상도동 이봉렬 할아버지. 빗물을 받기 위해 집 앞에 크고 작은 대야를 늘어놨다(좌). . 이봉렬 할아버지가 수도관 설치 소식을 듣고 찾아온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15년전 충북 제천에서 상도동 산동네로 이사 온 할아버지는 마을의 공동수도를 이용했지만, 5년전 이웃집에서 수도공사를 하면서 수도관이 끊어졌다. 할아버지는 그제서야 수돗물을 공짜로 써왔던 사실을 알고, 수돗물 먹기를 포기했다. 수도관을 연결시키려면 지금까지 몰래 쓴 수도료를 몽땅 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50년 육사 9기로 6·25에 참전해 1955년 소령으로 예편한 할아버지는 적보다 더 무서운 '체납 수도료'에 이렇게 수돗물 없이 살아온 것이었다. 그의 한 달 수입은 보훈처에서 나오는 명예수당 12만5000원과 재향군인회에서 주는 17만원 등 30만원 가량이 전부다.

할아버지는 벽에 즐비하게 늘어놓은 크고 작은 대야 5개를 보며 "이젠 저 대야들과 이별해도 되나요"라고 말했다. 그의 방안엔 전기밥솥 3개가 놓여 있다. 밥통, 국통, 그리고 빗물을 가라앉힌 뒤 보관해 두는 물통이었다.

40년전 부인과 사별해 홀로 살아온 그는 1남5녀를 두었지만, 자식들은 그의 생활에 힘이 되지 못했다. 아들은 대기업의 부장 출신이지만 빚보증에 자신의 앞가림조차 못할 정도가 됐고, 딸들도 자기 살기 바빴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제 내가 깨끗한 물로 씻고 죽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93년 가톨릭 성모병원에 그가 죽으면 전신을 기증하기로 약속했었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을 가져다 실험하고 화장까지 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훈수당을 받아온 보훈가족이었지만, 그동안 국가의 도움에서 잊혀졌던 노병(老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