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야 윷이다. 한 번 더 던져야지 뭐하노!"

필리핀에서 시집온 노치린(Nochelyn·27)이 윷을 던져놓고도 멀뚱히 서 있자 문공연(74·대구시 서구 원대동) 할머니가 답답한 듯 소리를 쳤다. 노치린은 "왜?"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때 문 할머니가 "아직까지 한국 아줌마 되려면 한참 멀었다"며 혀를 차자 윷놀이 판은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뤘다.

15일 오후 대구시 서구 비산동 월마트 비산점 야외광장에서는 까무잡잡한 외국인 여성 30여명과 할머니 5명이 베개만한 윷을 들고 이색적인 윷놀이를 벌이고 있었다. 제일종합사회복지관과 월마트 비산점이 마련한 '한가위 사랑나누기' 행사 중 하나. 한국으로 시집와 외롭게 지내고 있는 외국인 주부들에게는 고향에 있는 부모를,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는 소식이 끊겨버린 자식을 각각 대신하는 자리였다.

마리루(여·30·필리핀)는 2000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직장 동료와 결혼, 5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시집온 후 고향의 명절은 잊고 산다. 고향 방문도 2번밖에 못했다. 때문에 한국에서 명절이 돌아오면 괜히 외롭게 느껴지고 남몰래 눈물지을 때가 많다. 마리루는 "필리핀의 추석인 할로윈(11월1일)이 생각난다. 가족과 함께 만들어 먹던 잡채 같은 반싯(pansit), 떡과 비슷한 비코(bico) 등 필리핀 명절 음식이 그립다"고 했다.

행사에 온 가족이 출동한 강영근(46·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네. 강씨는 부인 로살리(Rosalie·39·필리핀), 첫째 딸 민지(5), 한살박이 민선이까지 모두 데리고 나왔다. 6년 전 중매로 국제결혼을 한 강씨 부부는 매년 명절 때마다 외국인들을 위한 행사나 잔치를 찾아 다닌다. 고향을 떠나 외롭게 사는 아내를 위해 강씨가 잊지 않고 챙겨주는 선물이다. 이날 외국인 주부들에게 한국문화를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은 김연심(78·대구시 서구 원대동) 할머니는 "모두가 발길을 끊어 47년 동안 혼자서 명절을 보내 왔다. 피부색이 다르고 우리 문화에 서투르지만 함께 있으니 내 며느리 같고 내 딸 같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