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카메라에 현기증을 느낄 때면, 가끔은 고전적인 영상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가 연출한 '신데렐라 맨'(Cinderella Man)이 그 한 예다. 고정된 카메라는 러셀 크로우의 체중 실은 주먹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매맞아 돈 버는 남편에게 생계를 의존해야 하는 르네 젤웨거의 오열을 묵묵히 바라본다. 가족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신물부터 내고 보는 냉소주의자들은 고개를 돌리겠지만, '신데렐라 맨'은 휴먼 드라마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관객의 2시간 20분을 다정하게 위무한다.
복싱협회 사무실을 찾아가 모자를 벗은 채 잔돈푼을 구걸하는 사내가 있다. 한 때는 헤비급 챔피언을 노리던 권투선수 제임스 브래독(러셀 크로우). 부상을 숨기고 출전한 경기에서 패배한 이후 그는 대전료 50달러짜리 퇴물 선수가 되어버렸고, 미국의 1930년대를 암흑으로 만들어버린 대공황은 브래독을 부둣가 막노동꾼으로 내몰았다.
끼니를 걱정하던 아내(르네 젤웨거)는 결국 아이들마저 친정으로 보내버린다.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던 그에게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 예전의 매니저 조 굴드(폴 지아매티)가 주선해준 경기에서 브래독은 빌려 끼고 나간 글러브로 멋지게 재기하고, 연전연승의 신화를 써 나간다. 대공황에 신음하던 가난한 미국인들은 브래독의 승리에서 자신의 희망을 보고, 그를 동화 속 주인공처럼 '신데렐라 맨'이라 부르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실제 인물인 권투선수 제임스 브래독의 삶을 다룬 이 전기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폴 지아매티의 연기. 러셀 크로우의 기품과 르네 젤웨거의 매력도 여전하지만, 상대선수의 반칙에 링 위까지 뛰어올라 삿대질을 벌이는 지아매티의 벗겨진 이마를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배어나온다.
지난해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소심한 영어교사 역으로 삶의 감춰진 진실 하나를 드러냈던 그는,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인생의 달콤함과 씁쓸함을 예민하게 들춰낸 뒤 때로는 호들갑스럽게, 때로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올해 6월 미국에서 개봉한 '신데렐라맨'은 기대했던 것 만큼의 흥행성적과 평단의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폴 지아매티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시간과 입장료를 아까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