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총선에서 일본 연립여당이 ‘초(超)거대여당’으로 등장하면서, 일본 외교에 ‘질적인 전환’이 이뤄질지 여부에 주변국들의 우려섞인 시선이 쏠리고 있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의 재량권이 커진 만큼 1인 외교가 주목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연립여당이 중의원 3분의 2 의석을 차지한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국내적으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지만, 외교는 상대방이 있는 만큼 고이즈미 외교의 우선 순위가 무엇이 될지가 중요해진다.

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고이즈미 총리가 집권 이후 견지해온 '보통국가화 노선'에 따라 개헌 논의의 활성화, 방위력 증강, 미·일 동맹의 세계화 등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이즈미 3기 내각에선 미·일 간의 외교군사 동맹관계는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일본의 헌법개정과 대외군사활동 강화를 요구해온 미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승리가 확정되자 즉각 환영 성명을 내고 "고이즈미 총리가 전례없는 권한을 갖게 됐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고이즈미 총리에게 당장 닥친 문제는 각각 11월 초와 12월 중 시한이 만료되는 테러대책특별조치법과 이라크 자위대 파견계획의 재연장 문제다. 지금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겠다"고 밝혔으나, 미국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미·일 간의 최대 현안인 오키나와(沖繩) 주일 미군기지 부담삭감 협상,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미 육군 제1군단사령부의 일본 이전 등 주일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미·일 협상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외교의 '아킬레스건'은 역시 아시아 외교다. 자민당은 선거공약에서 '북한 문제를 포함한 아시아 외교에서의 리더십'이라는 말로 아시아 외교전체를 일괄했다. 총선이 끝나자 마자 한국·중국과의 관계 등 아시아 외교강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보통국가화' 노선 추구로 한·일 관계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재집권이 한·일 관계에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8·15 담화에서 보여주듯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의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선 고이즈미 총리가 대북 관계에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한 외교평론가는 "2002년 9월 17일 평양방문은 고이즈미 외교의 빛나는 금자탑"이라면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북 수교를 통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북 관계는 작년 말 가짜 유골 문제로 냉각된 상태. 아직은 가설(假說) 단계이지만 고이즈미 총리가 6자회담의 추이를 봐가며 내년 중 제3차 방북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났듯이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국내여론이 가라앉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외무성의 한 소식통은 "야스쿠니 문제 해결이 2루타라면 일·북 수교는 홈런쯤 된다"면서 "작년 2차 방북 때 모종의 역할을 한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의원이 '일북 수교가 중요과제'라고 거듭 언급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집권 이후 중·일 관계는 야스쿠니 문제를 시작으로, 동중국해 가스전 개발 분쟁, 대만문제 등으로 꼬일대로 꼬여 있다. 올 초 미·일 외교 국방장관 간의 2+2회담에서 적극 개입 자세를 밝힌 대만문제는 자칫 군사문제로 번질 소지가 있는 만큼 고이즈미 총리의 힘을 벗어나는 문제다.

고이즈미 총리의 재집권을 환영하는 재계(財界)도 대중관계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야스쿠니 문제 참배는 연내 참배설이 다수다.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일·중 관계는 정랭경열(政冷經熱·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 상태가 이어질 전망이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가 대통령과 맞먹는 권력을 거머쥐게 된 이상, 국내 여론이나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기보다 외교에서 독자색을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쿄=정권현특파원 khjung@chosun.com)
(선우정특파원 s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