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이고 해석이 열려 있는 극이 좋다"는 연출가 양정웅씨. 언어를 뛰어넘으려는 그의 욕망은 결국 바비칸 입성으로 이어졌다.

"바비칸은 막연히 언젠가 한번 서고픈 무대였어요. 그 '언젠가'가 이렇게 빨리 오다니, 꿈의 무대에 오른다니, 잠이 안 옵니다. 아직도 얼떨떨해요."

연극 '한여름 밤의 꿈' 중 "이게 꿈이요 생시요?"라는 대사를 빌려 마음을 드러내는 연극 연출가 양정웅(37·극단 여행자 대표)씨의 목소리는 몹시 들떠 있었다. 그럴 만했다.

양정웅씨는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와 함께 세계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영국 바비칸(Barbican) 센터로부터 "내년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지 바비칸 대극장에서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을 6회 공연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바비칸에 한국 연극이 초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셰익스피어 연극 본고장 최고의 무대에 한국인이 빚어낸 셰익스피어 희극이 역수출되는 셈이다.

"8월에 '한여름 밤의 꿈'으로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런던 글로그 극장에 들러 '태풍'을 봤어요. 16세기 세워진 셰익스피어극의 초연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기(氣)라도 좀 받으려고.(웃음) 그런데 그 직후에 바비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에든버러에서 양정웅의 '한 여름밤의 꿈'을 본 바비칸의 루이즈 제프리스(Louise Jeffreys) 연극·무용 담당 예술감독이 초청 의사를 알려온 것이다.

바비칸은 로버트 윌슨, 피나 바우슈, 머스 커닝햄 등 톱 클래스의 연출가·안무가의 작품으로 무대를 채우는 극장. 링컨센터 같은 곳은 극장을 빌려주는 대관(貸館)공연도 병행하지만 바비칸은 엄선한 기획 공연만을 직접 주최한다는 점에서 진입이 어려운 극장으로 꼽힌다. 제프리스로부터 "'한여름 밤의 꿈'의 한국적 해석이 재미있고 역동적이었으며 배우 훈련도 잘돼 있었다"는 평을 전해 들었다는 연출가는 "유럽 공연계의 허브 역할을 하는 바비칸을 거쳐 또 다른 도약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바비칸은 오태석도 이윤택도 아닌 30대 연출가를 호명했지만 양정웅은 이미 한국 연극의 기대주였다. 그는 2003년 '카르마'로 이집트 카이로국제실험예술제 대상을 차지하고 문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 연극부문을 수상하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2년 세계 무대를 겨냥하고 만든 '한여름 밤의 꿈'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뼈대만 남긴 채 도깨비 이야기와 사물(四物) 등 한국적 소리와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무대를 채우는 희극이다.

송혜숙 서울예대 교수는 "바비칸 진출은 영국 입장에선 셰익스피어의 동양적 확장이고, 우리로선 한국 연극 언어가 세계적 인증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뮤지컬 '명성황후'나 비언어극 '난타'를 뛰어넘는, 한국 연극 역사상 가장 값진 성과를 낸 연출가는 "연극은 문화상품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연극은 찌그러진 창을 든 돈키호테 같은 예술이에요. 바비칸 진출 이후에도 상업화되지 않고 다음 풍차를 향해 돌진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