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경영했던 사마왕의 무령왕릉에서는 매지권(買地?)이 나왔다. 절대왕권을 가진 이는 나라 전체가 그의 것인 줄 알았는데 왕도 영원히 잠들 땅을 확보하기 위해 지신(地神)에게서 땅을 사들인 것이다. 매지권은 지신에게 땅을 쓰도록 허가받았다는 일종의 매매계약서인 셈이다. 세상에, 지신과 계약을 하다니! 사마왕 때 백제는 불교국가였지만 불교가 백제를 접수한 것이 아니라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어서 그들은 여전히 자연의 기기묘묘한 능력을 믿고 자연 앞에서 겸손해지며 자연에 기대어 자연을 존중하며 살았던 것이다.
무령왕릉에서 가까운 계룡산은 이미 백제시대에도 명산이고 영산(靈山)이었다. 서쪽 신원사에는 유명한 산신각(山神閣)이 있다. 삼한(三韓) 시대부터 기도가 끊이지를 않았던 곳이고, 신라와 고려와 조선은 그곳에서 나라를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수많은 나라들이 명멸해갔지만 계룡산 산신제(山神祭)는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교인이건, 무속인이건, 유림이건 그곳이 기도하는 터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곳은 굿을 통해 용을 부르거나, 기도를 통해 영을 만나거나, 염불을 통해 원을 이루거나, 비록 형식은 달라도 세상의 모든 기원이 한없이 모여 깨끗해지는 곳이다.
산신각은 불교의 전통신앙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불교보다도 더 오래되고 유교보다도 더 오래된 이 땅의 종교고 정신이다. 사실 산(山)이 신(神)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신이 아닌 존재가 없다. 하늘이 신이고 별이 신이고 강이 신이다. 계곡이 신이고 나무가 신이고 바위가 신이다. 세상의 모든 신을 섬기는 이들은 '내 속의 신성'에 눈을 뜬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만물이 세상의 모든 생기를 나눠 가진 형제자매들이다. 형제니까 함부로 할 수 없고, 자매니까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
묘하게도 이곳 신원사 산신각에 들면 하늘을 믿게 되고 터를 믿게 되고 마침내 산신령을 믿게 된다. 도시에서는 전설처럼, 풍문처럼 헛된 미신인 것이 여기 오면 지혜가 되고 힘이 된다. 지식도, 직업도, 나이도 모두 거추장스러운 장식인 양 떼어내고 오로지 자연인으로서 '나'만이 남아 하늘을 향해 눈을 뜨고 나무를 느끼고 물을 느낀다. 그렇게 자연으로 열려 있으면 저절로 고백하게 된다. 자연은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이라고.
그런데 이곳 계룡산이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호남고속철이 계룡산을 뚫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이미 국도 1호선 확장공사로 계룡산 동남쪽에 총연장 4㎞ 가량의 터널이 뚫리고 있다. 거기에 계룡산 북서쪽이 고속철 건설로 훼손될 예정이란다. 계룡산의 양날개가 다 부러지는 형국이다.
계룡산이 어떤 산인가? 세상살이의 고뇌들이 다 찾아와 순하게 잠들던 곳, 첩첩산이 아니라 홑산인데도 우뚝, 편하게 솟아올라 충청도의 상징이 된 곳, 그 품의 넉넉함을 믿어 정권마다 그 산에 기대어 세상의 질서를 세우고자 기웃거렸던 곳이다. 그런 산을 훼손한다는 것은 회사로 치면 손대서는 안 되는 자본금을 뽑아 나이트 클럽에 가서 노는 격이다.
과학기술을 믿고 자본을 믿는 이 시대가 기술에 밀리고 돈에 밀려 마침내 보호구역으로 쫓겨난 쓸쓸한 인디언 문명을 다시 조명하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 대지가 죽어가면 우리들도 서서히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동의하게끔 세상이 너무 황폐해진 것이다. 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문주의자 앙드레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21세기는 영성(靈性)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