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애주가들은 술집에서 보드카를 주문할 때 흔히 “질료니 즈미이 한 병 달라”고 한다. ‘초록 뱀’이라는 뜻이다. 보드카 병을 쥐고 손목 힘으로 돌리다 갑자기 멈추면 ‘술기둥’이 일면서 회오리가 솟구친다. 이 보드카를 병째 목으로 쏟아붓는다. 술이 잘 넘어가고 식도에 낀 이물질도 씻겨내려간다고 한다. 그 ‘회오리’가 뱀이 또아리를 트는 모습이고, 인기 보드카의 상표가 녹색이어서 ‘초록 뱀’이라 부른다.

▶앙드레 지드는 “술 마시는 장면이 빠진 러시아 소설은 관절 빠진 손과 손목과 손가락 같다”고 했다. 러시아인에게 보드카는 수많은 술 중 하나가 아니라 러시아 그 자체다. 춥고 음산한 날씨에 어쩐지 어울리는 독주다. 러시아 주당들은 2~3차를 가지는 않지만 쓰러질 때까지 마신다. 술을 먹고 쓰러진 사람 머리에 술을 부어주는 풍습까지 있다.

▶러시아 정부는 1995년 국민 건강을 위해 독주 보드카 소비를 줄여보려고 술 광고를 금지했다. 맥주는 술 아닌 음료로 간주해 계속 광고를 허용했다. 결과는 엉뚱했다. 맥주 소비가 늘면서 맥주와 보드카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요르시(가시가 매서운 민물고기)’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맥주 없이 마신 보드카는 쓸 데 없이 쓴 돈과 같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하는 수 없이 러시아 정부는 올해 초 맥주 규제 법안을 다시 만들었다.

▶‘한국의 보드카’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소주다. 미국 각 주(州)들은 20도 넘는 독주의 판매를 까다롭게 규제한다. 별도 독주판매 면허가 없는 음식점은 소주를 팔지 못하게 돼 있다. 캘리포니아 한인사회는 “소주는 한국인의 국민적·사회적 술”이라며 예외적인 음식점 판매 허용을 꾸준히 청원해왔다. 결국 1999년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별도 면허 없이 한국음식점과 일본음식점에서 소주를 팔 수 있게 했다. ‘국민주’로 국제 공인을 받은 셈이다.

▶5년 전 소주 세율을 35%에서 72%로 올렸던 정부가 내년엔 90%로 인상하기로 했다. 반면 90%인 맥주 세율은 72%까지 낮춰 2년 뒤면 소주값과 맥주값이 같아지도록 했다. 국제수준에 맞추려는 시도라고 한다. 그러나 여당은 소주 소비자 가격을 많게는 200원가량 높일 소주 세율 인상을 보류하기로 했다. 세수(稅收)에 큰 차질이 생길 판이지만, 소주값을 지켜보는 서민들의 눈초리가 심상찮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홧김에 소주와 맥주를 섞는 ‘소맥 폭탄주’가 급증해 국민 건강을 해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태진 수석논설위원 tjo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