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냉장고 박사’, 대통령 주치의 출신 명의(名醫), 토지공개념 연구가 등 왕성한 학문활동으로 명성을 떨친 서울대 교수들이 정년(65세)을 맞아 잇따라 강단을 떠났다. 하지만 퇴임 이후에도 쉬지 않고 연구활동을 하겠다는 교수들이 대부분이어서 서울대발(發) 교수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전재근(全在根) 식품·동물생명공학부 교수는 1980년대 말 세계 최초로 김치냉장고를 개발한 '원조' 김치냉장고 박사다. 요즘 신선한 김치를 오래 맛볼 수 있는 건 모두 그의 덕분인 셈이다. 식품산업 자동화 전문가인 전 교수는 "수원에 있는 개인농장으로 사무실을 옮겨 식품관련 발명품을 개발하고 저술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초단파를 이용해 우유를 살균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중이다. 이 기계가 완성되면 중소 목장에서도 직접 우유를 만들어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음식에도 철학이 있다"며 "앞으로 식품 심리학 분야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항암치료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노경(金潞經) 의학과 교수는 오는 10월 중순부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국립암센터에 매주 3차례씩 외래 교수로 활동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암 환자가 급증하는 데 비해 이들을 진료할 전문의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힘이 닿는 대로 직접 암 환자들을 돌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6년부터 2년간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주치의로 일한 바 있다. 1999년에는 서울대 의대 졸업생으로부터 '자랑스러운 스승'에 선정될 정도로 명의로 손꼽힌다.
국제경제학 전문가 홍원탁(洪元卓) 경제학부 교수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시절 토지공개념 연구를 이끌었던 실무 주역이었다. '국제무역학' 명강의로 기억하는 제자가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인 그는 조만간 자신의 역사관을 담은 동아시아 역사연구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후배교수가 전했다.
경영학과 교수이지만 자연과학·인문사회학을 넘나드는 학문적 지식으로 유명한 윤석철(尹錫喆)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대학에 계속 나오면서 집필활동에 열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여동생의 남편이기도 한 그는 독문과에 입학했다가 물리학과로 전과(轉科)해 인문·사회·자연대를 망라한 문리대 수석으로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다.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전기공학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동시에 땄다.
그는 지난달 31일 퇴임교수를 대표한 고별사에서 "전류가 흐르면 저항이 발생하는 것처럼 무슨 일을 하면 항상 반대세력이 뒤따르는 게 자연법칙"이라며 최근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울대를 빗대어 격려했다.
이 밖에 서울대 간호학과 1회 졸업생 출신으로 1960~70년대에 서울대 의대 간호과장과 교수직을 동시에 맡아 화제가 됐던 박정호(朴貞浩) 간호학과 교수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 환자에 대한 간호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국제방송협회(IBS) 창설 등 언론 방송분야에서 공헌한 추광영(秋光永)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서울대 명예교수로서 특강, 저술활동을 지속한다. 이번에 서울대에선 20명의 교수들이 정년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