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중국 일본의 관계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이다. 한쪽에서는 동북아 공동체 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일본의 팽창적 군국주의로 인한 한·일(韓日), 중·일(中日) 간 충돌이 예사롭지 않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태평양경제협력체(PECC) 총회에 참석한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 칼 카이저(71) 교수로부터 동북아 평화를 이루기 위해 한·중·일 3국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들어보았다./편집자
―현재 한·중·일(韓中日) 3국은 어느 정도 경제적 협력을 하고 있지만 유럽공동체 같은 정치적 공동체 결성의 전망은 요원한데.
"유럽공동체는 정치적인 추진력과 경제적인 결속력이 모두 강해서 성공했다. 한·중·일 3국이 경제적인 면에서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아주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통합 없이 동북아 공동체는 기대할 수 없다."
―독일은 프랑스나 폴란드 등 2차대전 때 독일에 큰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유럽통합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의 반성에 대해 주변국들은 독일만큼 진실성이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중국이나 한국이 일본을 불신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일본에도 과거사 반성에 대해 부정적 태도보다는 긍정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나 정치 지도자들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독일 지도자들은 긍정적인 목소리를 담아 독일을 대표해왔다."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종전 60주년 행사 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과 미래를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한국과 중국에는 이것이 기회다. 아시아 공동체 결성은 일본 혼자서도 할 수 없지만 한국이나 중국 혼자서도 할 수 없다. 죽은 자를 위해 참배하기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서로 손 잡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
―과거사를 정리하려면 정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국 정부는 상대 국민에 대해 편견과 차별주의를 버리도록 교육해야 한다. 또 3국 대표가 모여서 과거사 위원회를 만들고, 여기서 채택된 내용을 정책에 입안해야 한다. 유럽 각국은 역사를 정리하기 위한 합동 위원회를 만들어 교과서를 만들었다."
―한국과 중국은 대개 일본이 잘못했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는 쇼비니즘(국수주의)으로 흐르고, 갈등의 원인이 된다. 유럽의 전쟁은 대부분 민족주의 때문에 시작됐다. 정치인들이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건 위험하다. 민족주의는 럭비공과 같아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일본은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려고 한다. 제3자적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프랑스와 독일도 자를란트를 놓고 비슷한 분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자를란트의 주민은 투표를 통해 독일을 택했다. 물론 무인도인 독도는 그럴 사항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조어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마냥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국제 분쟁 사법 재판소에서 한번에 해결해 결과에 승복하는 것도 미래로 가기 위한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는 걸 반대하고 있다.
"영토분쟁은 자칫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사태를 완화하는 게 전쟁하는 것보다 낫다. 북해의 유전 지역을 놓고 유럽 각국이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해 평화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사태를 완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중국과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동북아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3국 간 경제적 통합은 이 지역의 전쟁 가능성을 막을 수 있다. 유럽의 수많은 공동묘지가 전쟁의 추악함을 잘 나타내준다. 그러나 전쟁을 완전히 제거하려면 정치적 통합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 통합이 아무리 잘 돼도 정치적 통합이 없으면 민족주의 앞에서 무릎을 꿇기 마련이다. 예컨대, 얼마전 중국에서 반일 데모가 크게 벌어진 적이 있다. 반일 정서에 기름을 부은 듯 전국에 불길처럼 번졌다. 그러나 데모가 통제 불능상태로 흐르자 중국 정부는 즉각 중단시켰다. 이 사태가 더 진전됐더라면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데모가 중단된 이유는 경제적 필요성 때문으로 판단된다."
―통일문제 전문가로서 현재 북핵사태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한반도 지역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
"서독의 경우 동독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것이었다. 빌리 브란트가 동독 갈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상대편 국가의 정권 교체를 요구하면 안 된다. 상호갈등과 상대방의 고립만 초래할 뿐이다. 브란트는 항상 점진적 변화를 요구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아주 점진적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는 통일비용이 너무 클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이 많다.
"독일은 통일을 너무 간단하게 생각했다. 통일 이후 3조유로(3883조원) 이상을 퍼부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서독은 부자이고 동독은 가난했기 때문에 부자가 가난한 사람 도와줘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한국 정치인들도 통일을 위해서는 그 같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국민을 교육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