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일 총선을 앞둔 일본 정계는 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죽느냐 사느냐"의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무대를 만들고 주인공으로 나선 사람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다. 전국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화신(化身)임을 자처하는 그는 과거에는 파벌 영수들의 양해 없이 꺼내들 수 없었던 '국회 해산권'이라는 칼을, 누구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보기 좋게 휘둘렀다. 그러고는 반대파들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베어버렸다.
"당내 반발이 강한 우정(郵政) 민영화 법안을 근소한 차이로 통과시켜봤자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레임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 직접 신임을 물어보자" 고이즈미 총리가 그런 생각을 갖고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뒤 총선에 돌입했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일본 자민당은 '우정 개혁' 같은 정책 문제로 분열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자민당은 권력을 유지할 때만 당의 결속이 유지되고, 정권의 자리에서 떨어지면 와해되는 당으로 통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런 상식을 뒤엎어버렸다. 출마자들에게는 공천의 전제조건으로 우정 민영화에 협력한다는 충성 서약을 강요했다. 반란파들을 당에서 몰아내는 데 끝나지 않고, '자객(刺客·대항후보)'을 보냈다. 이런 잔혹극은 '화(和)'를 중시하는 일본의 정치 풍토에선 보기 드문 장면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연출하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고이즈미 극장'에는 관객들이 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선거는 처음 본다. 당연히 투표하러 가겠다."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높은 투표율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일본의 투표율은 50%에 겨우 턱걸이할 정도로 유권자들의 정치 무관심은 위기적 수준이었다. 투표해봐야 정치는 안 바뀐다는 무력감이 무관심의 온상이었다. 투표 행동이 정책 실현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으면 투표율은 당연히 높아지는 법. 모든 전개가 고이즈미 총리가 의도한 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공세에 이렇다 할 대응도 못 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제1야당 민주당의 초조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반대파 숙청과 동시에 선거전이 시작된 것은, 민주당으로선 상정하지 못한 상황 전개다. "이대로 가다가는 도시지역에서도 참패한다"는 여론조사에 민주당 지도부는 갑갑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개혁'을 기치로 세력을 확대해온 민주당은 도시지역에서만큼은 자민당을 압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바람은 거꾸로 불고 있다. '우정 개혁'에 올인한 고이즈미 자민당에 민주당 외에 4개의 야당이 달려드는 선거구도가 되다 보니, 오히려 "자민당이 개혁당, 민주당이 수구당"으로 비치고 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대표가 "우정 개혁이 전부가 아니다"고 호소해도 메시지 전달이 잘 안 된다.
각종 여론조사가 자민당의 승리 가능성을 점치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선거 후를 더 주시하고 있다. 자민당이 이기면 대외적으로는 민족주의적 색채를 더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고이즈미 총리는 다시 야스쿠니 신사를 찾게 될 것이고, 한국·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삐걱거릴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수법에만 눈이 팔릴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의 한·일 관계를 걱정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권현 도쿄특파원 khju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