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러시아 말로 대화가 시작됐다.

"유골은 어떻게 하셨어요?"

"집에요. 카자흐스탄에 있는 장인에게도 아직 아내 소식을 알리지 못했어요. 두 딸에게도요. 어떻게 전해야 할지…."

"그 심정 제가 잘 압니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 버리세요."

29일 오후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두 사내가 기구한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돌아온 한재성(38·사진 오른쪽) 선교사와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3세 노동자 이(李)비탈리씨(43). 한씨는 카자흐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지난해 9월 집에 침입한 강도가 휘두른 흉기에 아내 김진희 선교사를 잃었다. 돈을 벌기 위해 2002년 고국을 찾은 이씨는 지난달 31일 아내 이(李)니나씨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비탈리와 니나씨 부부는 체불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체류기한을 맞았고,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니나씨는 체류기한 마지막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다큐멘터리 감독 김우현씨와 봄빛여성재단 안현숙 상임이사 등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최근 한재성·김진희 부부 선교사 등의 이야기를 다룬 '팔복-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규장)를 펴낸 김 감독은 비탈리씨의 사연을 듣고 지난주 인터넷을 통해 모금운동을 시작하면서 한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선교사도 이씨 사연을 듣고는 "돕고 싶고, 만나고 싶다"고 해 이날 만남이 이뤄졌다.

김 감독은 인터넷으로 모금한 400여만원과 봄빛여성재단 정혜원 이사장의 후원금을 이날 비탈리씨에게 전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 등 단체와 개인의 성금도 답지했다. 한재성 선교사도 "작으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며 비탈리씨의 손에 흰 봉투를 쥐여줬다. 너무 늦었지만, 아내의 밀린 임금도 받을 수 있었다. 9월 5일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갈 비탈리씨는 "한국에서 많은 일이 있었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들 만났지만 오늘 여러분처럼 귀하고 좋은 사람을 만난 것에 감사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