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광주광역시 조선대학교 본관의 중앙 입구 안쪽에 있는 수위실. 2평 남짓한 공간에 합판으로 만든 조그만 책상이 있다. ‘인간관계론’, ‘현대사회의 정보 윤리’, 그리고 볼펜으로 깨알같이 써놓은 연습장…. 문종규(51)씨는 “교수님들이 오며 가며 읽어 보라고 주신 책들”이라고 했다. 수위실 절반을 차지하는 사물함을 열어 보니 ‘경영학의 이해’ 등의 서적과 스프링 달린 대학 필기노트들이 십여권 세워져 있었다. “노트 하나 하나가 다 보물 같아서요. 보고 또 보고 안 잊어버리려고요.” 문씨가 웃으며 말했다.

조선대학교 수위로 20년째 일하고 있는 문종규(51)씨는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이 학교 경영학부(야간)를 졸업한 데 이어,최근엔 보건대학원 진학이라는 또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문씨의 이력은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1985년부터 이곳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수위다. 하지만 1999년부터 2003년까지는 수위이자 이 학교 경영학부(야간) 학생이었다. 지금도 모교에서 일하는 수위이자, 대학원 준비생이다. 그의 꿈은 보건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 대신 돈을 벌러 목포상고를 중퇴하고 무작정 상경했었지요. 장남으로서 동생들 학비 뒷바라지 하느라 책 한번 못 잡아봤어요. 고등학교 때 공부도 곧잘 해 담임선생님이 '대학원도 가겠다'고 하셨었는데…." 문씨는 학생들이 한아름 안고 가는 대학 교재들, 졸업식이면 머리에 쓰는 학사모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평소 신문을 보다가 모르는 말이 나오면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물어봐요. 그래도 모르면 다른 학생에게 또 물어보고…. 이렇게 조금씩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라고 못할까 싶었어요." 1996년부터 그는 업무 시간 틈틈이 수학 공식을 외우고, 오후 5시 일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밤 12시까지 고등학교 국·영·수 교과서를 파고들었다. 외우고 돌아서면 머릿속이 새하얗던 미적분과 복잡한 영문법…. "어떤 사람들은 '그 나이에 헛돈 들여 웬 고생이냐'고 하더군요." 그는 3년 동안 대입 검정고시에 5차례 떨어지고 6번째 합격했다.

문씨는 "대학 입학 후에는 나이 많은 아저씨라고 '왕따'당할까봐 MT에도 쫓아갔다"며 "아들뻘 되는 선배들도 차별 안 한다고 구르기, 엎드려뻗쳐 등 갖은 벌을 다 주더라"며 웃었다. 문씨의 지도교수였던 윤종록(51) 교수는 "항상 맨 앞자리에 앉아 아이들에게 노트 필기도 빌려주고 지각 한 번 안 해 따르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4년. 자신에게 '눈물 반, 괴로움 반'이라던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넘고 넘어 그렇게도 그리던 학사모를 썼다. 평균학점은 4.0만점에 2.94점. "이 정도면 수위아저씨 대학생 치고 잘 받은 거지요?"

졸업 후 이직 유혹도 있었지만 공부를 도와준 학생, 교수들이 있는 학교에 남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전교에 모르는 학생이 없는 그의 별명은 '미소짱' '스마일아저씨'다. 이유진(여·신문방송학2년)씨는 "한번이라도 본 학생들이 다시 오면 '밥은 먹었냐' '어디 찾냐'고 상냥하게 물어온다"며 "친절과 성실성이 몸에 배어 있는 분"이라고 했다. 문씨는 "전에는 그냥 아저씨라 부르던 학생들이 요즘에는 '선배님!' 이래요. 나만큼 후배 많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문씨는 요즘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느라 무척 바쁘다. 문씨가 보건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유는 퇴직 후 사회복지사가 되어 어렵고 힘들게 사는 노인들에게 수지침을 놓아주며 돌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로 돌아다니며 몸이 불편한 부모님을 제대로 못 모신 게 마음 아프다고 했다. "월 190만원 받는 제가 뭐 힘이 있나요. 몸으로 도와드릴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