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김구 선생님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따랐지요. 참 풍채 좋고 인자하셨는데…. 이젠 그런 좋은 추억만 가지려고 해요. 언제 이 나라가 광복군을 제대로 대우해 준 적 있수."
1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수원보훈원 내 보훈복지타운 서예실에서 만난 오희옥(79) 할머니는 아직도 광복군 얘길 하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눌러쓴 털모자에 허름한 코트, 다 닳은 가죽신발에 덥수룩한 수염. 겉모습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광채 번득이는 눈과 당당한 기백을 지녔던 광복군 아버지와 동지들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 오 할머니는 만주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자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별동대장이던 아버지 오광선(1896~1967) 장군을 따라 중국으로 갔고 1937년까지 난징(南京)에서 백범을 할아버지라 부르며 자랐다.
그 후 14살이던 1940년 충칭(重慶)에서 광복군이 창설되자 언니와 함께 광복군에 들어가 후방 선전활동에 참여했다. 구한말 의병장이었던 조부(오인수·1867~1935)와 부친에 이어 3대에 걸친 항일투쟁이었다.
그러나 광복 후 귀국하니 광복군 '전력'은 오히려 장애였다. 부친은 귀국해 국군에 몸을 담았으나 김구 선생과 절친하다는 이유 때문인지 자유당 정권에 의해 장군 진급에서는 철저히 배제됐다. 가족들은 고통과 가난 속에서 지내야 했다.
"계속 그렇게 살았아요. 친일파 자손은 떵떵거리며 살면서 땅까지 되찾겠다고 큰소리치는데 애국지사들은 정부보조금으로 10평 남짓한 임대아파트에 사는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 하는 게 현실이지."
오 할머니가 사는 보훈복지타운은 1996년 8평짜리 임대아파트 4개동과 13평짜리 3개동 등 모두 7개동의 숙소를 갖춘 전국 유일의 국가유공자 복지시설이다. 독립유공자와 상이군경, 전몰유족 등 45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는 모두 9명이다. 이들은 기본연금 월 70만8000원과 등급별 부가연금을 받아 다달이 5만~10만원의 아파트 관리비를 내며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물론 이런 혜택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전국 300여명의 애국지사들에 비하면 그나마 처지가 낫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 보훈복지타운에서 만난 독립유공자들의 대부분은 노환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중국에서 광복군 활동을 했던 황갑수(84·광복회 경기지부장)씨는 "국가보조금 조금 올려준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처우개선도 중요하지만 후손들에게 항일투쟁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광복회 경기지부 안홍순 사무국장은 "보훈복지타운에 거주하는 애국지사들은 '보름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15일 만나고 있으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갈수록 늘면서 참가자 수가 매년 줄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