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여름, 미국 로스앤젤리스. 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벌이는 축제 '아프리칸 마켓 플레이스' 랩 공연장에, 한 이방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18세 고교생인 그의 이름은 서정권. "저건 뭐야?"라며 눈 부릅뜬 흑인들 야유 속에 그는 더 커다랗게 눈을 떴다. 그리고 외쳤다. "나를 호랑이로 불러, 나는 호랑이처럼 랩을 하지…나는 태권도로 너희들을 날려버릴 수도 있어."('Call me tiger'). 주최측은 행사의 '광대'격으로 기묘한 한국인 랩퍼를 초청했지만, 그는 열기에 찬 랩과 태권도 동작을 응용한 몸짓을 쏘아대며 주인들의 기대를 배반했다. LA 흑인폭동 이후, 흑인 랩퍼 '아이스 큐브'가 한국인을 비하하는 노래 '블랙 코리아(Black Korea)'를 부르는 등 한흑(韓黑) 갈등이 심각했던 때였다.
13년이 흘렀다. 그 청년은 지금 태평양 건너 고국에서 '타이거 JK'로 불린다. 99년 듀오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를 결성, 지금껏 한국 힙합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12일에는 6집 '1945, 해방'이 빛을 본다. 그런데 그의 얘기, 좀 삐딱하다.
"'1945, 해방'은 저에 대한 거창한 규정 같은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뜻이에요. 사소한 제 느낌을 담고 싶었죠. 커피 한잔 마실 때 느끼는 즐거움도 저한테는 위대하니까요"
이번 앨범부터 '드렁큰 타이거'는 타이거JK 혼자 이끌어간다. 그림자처럼 함께 하던 파트너 DJ샤인은 사업을 하겠다며 탈퇴했다. "원래 비즈니스에 관심 많은 친구였다"며 씩 웃는다.
거칠고 직설적이었던 '드렁큰 타이거' 음악은 최근 문외한(門外漢)들도 쉽게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입체적으로 변했다. 또렷한 멜로디에 얹힌 타이거JK의 고음(高音) 랩핑이 핵심. 펑키 밴드 '윈디시티(Windycity)'의 연주와 T(윤미래)의 보컬은 그럴 듯한 '고명'이다. 아랫목에서 오래 묵은 청국장 냄새가 그득하다.
"미국의 최신 힙합 트렌드를 쫓아갈 필요 있나요.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 옆집 할머니, 매니저 동생들이랑 나눈 얘기를 편안하게 풀어내고 싶을 뿐이죠. 촌스러운 사람이 된건가요?"
그는 "제 라임(rhyme·압운)이 '중딩(중학생)' 수준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무조건 고사성어나 철학적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본고장 미국에서도 정작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건, 고등학교도 못 나온 랩퍼가 일상의 느낌을 살려 만들어낸 앨범"이라고 했다.
94년 타이거JK는 '한국인 랩퍼'로 매스컴을 타다가 한국에서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 데뷔전은 'KO패'로 끝났다. "우리 힙합이 진짜 힙합"이라고 항변하던 그는 '왕따'였을 뿐이다.
'드렁큰 타이거'는 힙합판에서 드물게 앨범을 낼 때마다 10만~30만장 판매고를 올렸다. '힙합 선구자'라는 호칭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터. 그러나 타이거JK는 "공연장에서 관중들 모두를 흥에 취해 뻗어버리게 만드는 데는 '내가 최고'라고 믿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