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 창설위원회 위원장 김구'는 광복군 창설을 공포하고, '한국 광복군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어 9월 17일 중경의 가릉빈관에서 광복군 창건식이 거행됐으며, 이청천 총사령과 이범석 참모장이 임명됐다.
광복군은 먼저 중국에서 활동했던 한인 군사조직의 통일을 추진했다. 1939년 11월 무정부주의 계열의 청년들이 중심이 돼 만든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1941년 1월 1일 광복군의 제5지대로 편입됐다. 이어 1942년 7월에는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의용대의 총부 및 1지대가 광복군 1지대로 재편성됐다.
이로써 광복군은 중국 관내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인 무장부대의 통합조직이 됐다. 이후 광복군은 부대를 전면 개편했다. 이청천 총사령과 김원봉 부사령 밑에 1지대(지대장 김원봉·본부 중경), 2지대(지대장 이범석·본부 서안), 3지대(지대장 김학규·본부 부양)와 제3전구공작대·제9전구공작대·토교대의 진용을 갖추었다.
광복군은 1945년 5월부터 미국 정보기관인 OSS의 특수훈련을 받아 국내 침투를 준비했으나 출동 명령 바로 직전 일제가 항복해 좌절됐다. 광복 직후 중국 현지와 국내에서 조직 확산 작업을 벌였으나 국내 조직은 미 군정의 해산령으로 사라졌고, 중국에서는 1946년 5월 16일 이청천 총사령의 ‘한국 광복군 복원(復員·고향으로 돌려보냄) 선언’으로 공식 해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