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많이 들른다는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양식당 거버너스 챔버. 'X파일' 사태 이후 이 식당에서는 예약 손님을 위한 14개의 방에 대해 점심 무렵 한 번, 저녁 때 한 번, 하루에 두 번씩 도청 탐지를 한다. 식당 관계자는 "최근 들어 '도청 방지 시스템은 있느냐. 미리 점검을 해 주면 좋겠다'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고객들이 원하면 식사 직전에라도 다시 점검을 해드린다"고 했다. 도청공포증이 그만큼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식당은 100만원짜리 도청 탐지기를 갖고 있지만, 오는 9월 출시되는 신형 도청 탐지기를 추가로 구입할 예정이다.
외국기업인들과 국내 경제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 서울 하얏트 호텔은 최근 순찰을 두 배로 강화했다. 3~4명의 순찰 요원이 객실 3~20층 사이를 1시간에 두 번씩 돌고 있다. 보안 목적도 있지만 도청기를 설치하려는 외부인들을 차단하는 데도 주력하고 있다고 호텔측은 말했다. 서울 광진구의 워커힐호텔 역시 "손님들 인원 체크 및 신상 파악도 더 철저히 하라"는 지시가 직원들에게 떨어졌다.
지난달 28일 저녁 여의도의 한 식당.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의 보좌관 박웅서(39)씨가 갑자기 휴대폰 통화를 끊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인근 공중전화 부스. 그는 조금 전 통화를 나누었던 상대방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를 정했다. 상대방은 한 공공기관의 비리를 제보하겠다며 연락해 온 사람이었다. 그는 "정 의원은 물론 우리 방의 다른 보좌관들도 중요한 대화를 나누거나 약속을 할 때는 공중전화를 이용한다"며 "모든 게 도청 우려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기자에게 "휴대전화를 몇 대 갖고 다니는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서울과 지역구인 부산, 또 이동하는 차 안에서 사용하는 휴대전화가 각각 다르다. 3개 중에 2개는 다른 사람 명의로 돼 있다.
허준영 경찰청장 사무실에는 레이저 도청 방지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레이저 도청은 외부에서 도청을 하려는 사무실의 유리창에 레이저 빔을 발사, 되돌아오는 반사신호에서 음성성분을 분석해낸다. 경찰청은 이런 식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중요회의를 할 때는 가급적 커튼을 치는 것을 불문율로 삼고 있다. 일선 경찰서도 1년에 1~2번씩 혹시 도청기기가 있는지 탐지하고 있다. 중요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경찰서는 탐지 횟수가 더 많다. 국가정보원은 "우리가 어떻게 도청방지를 하는지 가르쳐 주면 말이 되나"라고 밝혔다. 철저한 도청 방지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외교통상부는 중요 회의실에 도청 방지를 위해 반드시 커튼을 친다. 몇몇 회의실엔 도청 방지 장치도 설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도청탐지기를 갖고 있어 수시로 각 방을 점검한다"고 말했다. 유선 전화도 철저히 관리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문인식기가 설치된 문 두 곳을 지나야 겨우 전화선을 관리하는 부서에 들어갈 수 있다"며 "외부인이 이곳을 지나 도청기를 설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짓고 있는 주요 해외 공관의 경우 국정원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도청기기가 건물에 심어질 가능성을 대비하고 있다. 자재들을 전부 도청감지장치로 검사하고, 골조를 만들었을 때도 일일이 검사한다. 현재 주중대사관 건설현장에는 검색대를 설치해 인부들의 몸에 도청장치가 있는지 살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도 수원시청은 X파일 사태 이후 수시로 도청 탐지 장비를 돌리고 있다. 이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도청 탐지를 했는데 최근에는 2주 동안 6번을 실시했다. 담당 팀에는 "각별히 신경써라. 샅샅이 훑어라"는 구두 지시가 내려갔다. 수원시청 이병일 통신팀장은 "내가 직접 장비를 가동하며 확인했다"며 "탐지 업무는 외주를 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세상에 어떻게 외부인을 그냥 믿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조의준기자 joyju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