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비 내리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주변의 먹자골목. '초록기둥', '이바돔 옥아리', '生(생)스' 같은 돼지·삼겹살 식당들은 발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북적댔다. 한때 고급 일식집이 즐비하던 이곳 먹자골목에 요즘 10~15m 정도 거리를 두고 모두 8곳의 돼지·삼겹살 식당이 새로 들어섰다.
현대백화점 맞은편의 압구정역 먹자골목은 알짜배기 '압구정 상권'으로, 수년 전만 해도 일식집이나 중식당 등 고급 음식점이나 옷가게, 고급 카페가 주로 들어서 있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 최모(47)씨는 "(30~40평 기준) 보증금이 2억원, 월세 1000만원에 권리금만 1억5000만~2억원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황으로 손님의 발길이 줄어들면서 고급 식당들은 하나 둘씩 떠나고, 보다 적은 돈으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돼지·삼겹살 식당으로 대체되고 있다. 돼지·삼겹살 식당 관계자들은 "'生(생)스' 자리는 일식 돈가스집이었고, '이바돔 옥아리'는 고급 중국음식점, '초록기둥'은 맥주바였다"고 말했다.
한때 이곳 압구정역 먹자골목엔 일본식 술집인 노바다야끼가 거리를 휩쓴 적도 있다. 노바다야끼는 1인분에 2만원에서 2만5000원 정도의 가격대였는데, 대부분이 사라지고 이제는 1인분에 8000원 정도의 삼겹살 식당으로 바뀌었다. '국내 최고의 상권' 중 하나로 꼽힌 압구정 상권마저 불경기를 극복하지 못한 셈이다.
10년 넘게 압구정역 근처에서 한우고기집을 운영해온 황상환(62) 사장은 "사람들이 지갑을 안 열어서인지 요즘 들어 부쩍 삼겹살집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초록기둥'의 심완자(45) 사장은 "요즘 사람들은 분위기는 고급스럽지만 음식값은 싼 곳을 주로 찾는다"면서 "그중에도 체인형 돼지 삼겹살집이 단연 인기"라고 말했다. 압구정역 근처에 있는 회사를 다니는 손현직(27)씨는 "경기도 어렵고 해서 부담 없는 가격대의 식당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압구정역 먹자골목 안의 돼지·삼겹살 식당들 사이에도 울상을 짓는 곳이 나오고 있다. 돼지·삼겹살 식당들끼리 과열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먹자골목 주변에서 영업 중인 한 공인중개사는 "목이 좋은 곳에 자리잡은 삼겹살 식당 중 한 곳이 가게를 내놓았다"고 밝혔다.
싼 것을 찾는 욕구가 강해지다 보니, 이제 돼지·삼겹살보다 더 싼 김밥 가게도 성황이다. 압구정역 근처의 'ㄱ'상점에서는 "하루에만 6~700개 정도의 김밥이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2년 전 삼겹살 식당 '三(삼)김(삼겹살+김치)'을 연 오영훈(52) 사장은 "임대료와 인건비가 만만치 않아 압구정역 부근에서 삼겹살 장사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면서 "삼겹살집들이 너무 많이 생겨 앞으로 이 지역이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