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여성도 종중원 자격 있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보면서 조선중기 남원에 살았던 최씨 집안의 세 딸들에 관한 일화가 생각난다. 남원에는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유명하다.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최항(崔恒)의 후손들로서 8명의 한림학사와 5명의 옥당벼슬(八翰林 五玉堂)을 배출하였다. 최항의 6대손 가운데 미능재(未能齋) 최상중(崔尙重:1551~1604)이 있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권율 장군을 도와 군량미를 책임지는 운량장(運量將)을 지냈던 인물이다.

미능재에게는 슬하에 3남3녀가 있었다. 3명의 아들뿐만 아니라 3명의 딸들도 모두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어느 날 아버지는 딸 3명에게 글짓기를 시키면서 상품을 걸었다. 상품은 3종류였다고 전해진다. 당시 중국에서 수입한 최상품의 벼루 1개, 엽전이 가득 찬 1말, 소나무의 씨앗인 솔 씨 1말이 그것이었다.

시험 결과 둘째 딸이 장원이었다. 그래서 고른 상품이 벼루였다. 벼루를 받은 둘째 딸이 시집을 간 곳은 풍천노씨인 노옥계(盧玉溪:1518~1578) 집안이었다. 노옥계의 손자며느리가 되어서 4명의 글 잘하는 아들들을 낳았고, 이 아들들의 후손이 후일 크게 번창하였다. 현재 남원 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의 옥계서원에는 둘째딸이 상품으로 받았던 벼루가 보존되어 있는데, 요즘도 축문을 쓸 때는 이 벼루를 사용한다.

큰딸이 상품으로 받은 것은 '엽전 1말'이었다. 돈을 받은 큰 딸은 전북 임실군 삼계면의 경주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후손들 가운데 부자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삼계면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박사가 많이 배출된 마을로도 유명하다. 작년까지 104명이었고, 그 가운데는 경주김씨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딸은 익산에 살았던 진천송씨 송영구(宋英 :1555~1620)의 집안으로 시집을 갔다. 이때 친정에서 가져간 솔 씨 1말을 시댁 주변에 널리 심었음은 물론이다. 호남 고속도로 익산IC 부근에서 빽빽하게 자라는 소나무들은 400년 전에 셋째 딸이 뿌린 솔 씨가 종자를 퍼트린 것이다. 요즘도 송씨 집안 후손들이 최씨 집안 후손들을 만나면 술을 대접하면서 이 할머니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소설 '혼불'을 쓴 작가 최명희가 이 최씨 집안이었다.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