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차카 지역 역사민속박물관의 비테르 이리나 바실리예브나 박사의 입에서 "이 곳엔 칠천 개의 신화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움보다는 도리어 당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비테르 박사의 말처럼 '포그리니즈나야 체리토리야' 즉 경계지역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사이, 알타이·바이칼과 알래스카·캐나다 사이, 그리고 투르크·몽골 등 고대 아시아 문화와 아스테카·마야·잉카문명 사이, 그리고 고대와 현대 사이의 경계들….
북아메리카지역 인디언 속에서는 강력한 아시아적인 영향이 지금도 반복적으로 발견된다고 한다. 예컨대 한민족 신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까마귀는 신과 인간 사이, 상층·중층·하층 주재자 사이를 연결하는 보론(남자새) 또는 보로나(여자새)로서 아시아와 캄차카와 아메리카 사이에 보편화된 넓은 신화적 띠를 형성할 정도라고 한다.
박사는 말했다. "캄차카에서는 모든 사람이 샤먼이다. 모든 사람 안에 신과 소통하는 샤먼이 살아 있다." 이텔멘족 샤먼의 이야기에서 나는 고개를 깊이 끄덕이게 되었다. 이텔멘족은 여성이 남성으로, 남성이 여성으로 성전환하면서 샤먼을 집전한다. 이들은 첫째 의사소통(정치적 협의), 둘째 도움(경제적 호혜), 셋째 수확(집단적 생산활동), 넷째 병치료(제사에 의한 치유처방)라는 정치·경제·문화 삼축(三軸)의 현실 활동과 남녀간 음양전환이라는 이축(二軸)의 차원변화, 그리고 누구나 샤먼으로서 신과 소통할 수 있다는 대전제를 갖고 있다.
바로 한민족과 아시아 사상의 핵심 흐름이다! 알타이와 캄차카와 북미인디언의 '천지인-음양-한'사상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뚜렷이 밝혀준 데에는 아마 오래도록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알타이·바이칼과 캄차카·북미인디언의 샤머니즘에서 우주를 상·중·하 셋으로 나누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알타이·바이칼 쪽이 상·중·하계를 각각 하나씩으로 규정하는 데에 비해 캄차카·북미인디언은 상계 둘, 중계 하나, 하계 둘로 규정하여 '셋-둘-하나'의 구분이 나타난다는 점이 서로 다르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알타이의 영혼관이 첫째 그 거주장소, 둘째 그 역할, 셋째 그 사후관이 각각 분명한 데 비해 캄차카의 영혼관은 첫째 영은 인간의 생존과 함께 존재하며, 둘째 사후에 영이 하늘로 간다는 설과 지하로 간다는 설로 나뉘어 있다. 알타이 쪽이 유럽의 조금은 합리적인 신통(판테온)과 비슷한 데 비해 캄차카 쪽이 무규정·비합리를 용납하는 혼돈적 신관을 드러내고 있는 데에 이르러 나는 마침내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아하! 역시 신화 칠천 개를 가진 경계지역답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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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내 기이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의문이 있다. 하나는 캄차카 신화와 알래스카 등 북아메리카 신화의 거의 무차별적인 동일성에 비해 캄차카 신화와 알타이·바이칼 신화는 시시콜콜한 세목에서까지도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별성이다. 또 하나는 알타이·바이칼 등 아시아·캄차카 문화가 마야·아스테카·잉카문명에 대해서는 참혹할 정도로 이질적이고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박사의 캄차카·러시아적 역사학의 괴기성에 대한 의혹이었다. 혹시라도 이것이 과거 소비에트 시절 정치이념의 간섭의 자취이거나, 아니라고 강변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들어가곤 하던 역사과학의 그 당파성의 흔적이 아닌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김지하 ·시인 사단법인 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