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1일 "여성도 종중(宗中)의 회원자격이 있다"고 판결했다. 1958년 이후 47년간 유지해온 '종중 회원은 성년 남자에 한한다'는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여성도 종중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종중에 남자와 똑같은 비율로 재산 분배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세 이상 성인 여성에게도 종중원(宗中員)의 자격을 인정해 달라"며 용인 이씨 사맹공파, 청송 심씨 혜령공파의 출가 여성 8명이 종친회를 상대로 각각 낸 종원(宗員) 확인 청구소송에서 전원일치로 여성들에게 패소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여성에게 종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은 종래 관습은 1970년대 이후 사회 환경과 국민 의식의 변화로 법적 확신이 상당히 약화됐다"면서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 종중의 본질에 비춰 공동선조의 성(姓)과 본(本)이 같으면 성별과 무관하게 종원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엇갈린 반응
판결이 나오자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여성들이 만세를 불렀다. '딸들의 반란'이 성공한 순간이었다. "여성에게도 종중 회원의 자격을 달라"며 5년전 소송을 제기한 이원재(57)씨와 심정숙(68)씨 등은 승소 판결이 나는 순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한 뒤 오빠와 의절하고 살아왔다",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문중 사람들을 피해 골방에 숨어지냈다"고 털어놨다.
여성계는 대법원 판결을 환영했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는 "딸 아들 차별하는 관행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승관 성균관 전례위원장은 "출가한 여성이 친정의 종중에 참여하면, 남성도 똑같이 처갓집 종중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관습'이 바뀌었다
대법원의 판례변경으로 헌법재판소가 2월 호주제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린 후 남성 중심 제도의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던 종중문제가 남녀 평등의 대원칙 앞에 무너졌다. 종중은 실정법 규정이 없어 판례를 통해 관습법으로 인정돼 왔는데, 법원이 우리 관습이 변했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부계 혈통 중심의 기존 종중 문화는 더 이상 존립하기 어려우며 남녀평등 원칙이 사회관습으로 새롭게 자리잡았음을 확인한 것이다.
대법관 13명 중 7명은 여성이 성년이 되면 자동적으로 종원이 된다는 의견을, 6명은 종원이 되고자 하는 여성에게만 자격을 부여하자는 의견을 냈다.
◆판결 효력 소급 안해
여성들이 종원(宗員)이 되는 것은 21일 이후다. 종중은 앞으로 총회를 소집할 때 시집간 여성에게도 통지해야 한다. 남성들만 모인 종중 총회 결의는 무효가 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판결 선고의 효력은 소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 전에 성년 남자들만 참석해 결정한 종중의 재산 분배나 대표자 선임결의 등은 그대로 유효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이번에 승소한 용인 이씨와 청송 심씨 여성들도 분배절차가 이미 끝난 종중 재산을 받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