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씨의 별세로 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적통'(嫡統)이 끊어졌다.
조선왕조를 이은 대한제국은 1910년 일제 강점으로 멸망했지만, 이왕가(李王家)는 그 뒤로도 존속했다. 영친왕이 순종을 계승했고,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는 황세손(皇世孫)으로 불리웠다.
고종(高宗) 황제(1852~1919)는 모두 9남4녀를 두었지만 성장해서 혼인까지 한 아들은 명성황후 민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2남 순종(純宗) 척(拓·1874~1926), 귀인 장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6남 의친왕(義親王) 강(堈·1877~1955), 순헌황귀비 엄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7남 영친왕(英親王) 은(垠·1897~1970) 세 명뿐이다. 순종은 슬하에 자녀가 없었다. 때문에 영친왕은 형 순종이 즉위한 1907년 황태자가 됐다. 이복 형 의친왕을 제치고 황태자가 된 것은 그의 모친 순헌황귀비가 명성황후 사후 비(妃) 중에서 최고 서열이었기 때문이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한 뒤 영친왕은 '이왕(李王)'이라고 불리웠다.
1945년 광복 이후 이승만 정부는 옛 왕실(황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궁궐을 비롯한 옛 재산은 국가 소유가 됐고, 많은 후손들은 숨을 죽이고 살아야 했다. 영친왕의 맏아들 진(晋)씨는 일찍 죽었고 유일한 아들 구씨는 자녀가 없다. 왕실(황실) 복원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배경에는 이런 사정도 있었다.
의친왕은 모두 13남9녀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9남 충길(忠吉)씨가 생존자 중 가장 연장자로 '우리황실사랑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11남은 '비둘기집'을 부른 가수였던 석(錫)씨로 고종의 손자 중 현재 유일하게 국내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