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의 기량을 겨루는 18세기 지식인 선비들의 습속을 그린 풍속화 '시인휘호'로 담출 강희언의 작품이다.

수집벽, 정리벽은 18세기 매니아 지식인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표징이다.

그들은 낯선 것이 보이기만 하면 자료를 수집했고, 궁금한 것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전적을 뒤졌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을 꼼꼼히 차례 매겨 정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꽃, 새, 벼루, 골동품, 칼, 책, 여행, 수학, 그림, 물고기, 무예, 출판, 표구, 글씨 등에 미쳐 마침내 그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정보를 모으고 분류하는 것 자체가 전에 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연경에서 초록 앵무새 한 마리를 들여왔다. 그는 앵무새를 새장에 기르며 관찰한 내용과 관련 자료를 찾아 꼼꼼히 정리했다. 완성된 초고를 이덕무와 유득공에게 보였다. 두 사람은 더 많은 자료를 뒤져 앵무새에 관한 새로운 기록들을 찾아냈다. 초고가 그에게 되돌아왔을 때, 분량이 두 배 가량 늘어났다. 이서구가 17세 때 일이다. 박지원이 책 이름을 《녹앵무경(綠鸚鵡經)》으로 붙이고 서문을 써줌으로써 책은 완성되었다.

이들의 집체(集體) 작업은 몹시 흥미롭다. 행세하는 양반가의 자제가 성현의 말씀을 익힐 시간에 앵무새 사육에 몰두해 그 내용을 책으로 쓸 생각을 했다. 그러자 곁에서 함께 거들어 앵무새에 관한 고금의 기록을 금세 한자리에 다 모았다. 마치 정보 검색 능력을 두고 한바탕 경쟁이라도 벌인 형국이다.

옛날부터 한국 사람들은 꽃과 짐승을 관찰하며 사랑했고 그 때문인지 민속화에는 '화조도'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득공은 관상용 집비둘기를 사육하면서, 자신의 체험과 정보를 종합하여 《발합경》을 썼다. 최근 미국 버클리대 아사미 문고에서 발견된 이 책은 집비둘기 사육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23종의 비둘기를 생김새와 특징에 따라 이름을 붙였다. 좋은 비둘기 판별법과 품종 간의 교배방법, 비둘기의 성질과 집 만들기, 잡는 그물에 이르기까지 없는 내용이 없다. 이 책만 있으면 시청 앞 광장의 비둘기 이름을 품종별로 다 붙일 수가 있다. 이 밖에도 그는 호랑이에 관한 내용을 검색해서 정리한 《속백호통(續白虎通)》이란 책도 썼다.

두어 해 전 영남대 도서관에서 이옥(李鈺·1760-1815)이 친필로 쓴 《연경(烟經)》이 나왔다. 《연경》은 연초 즉 담배에 관한 책이다. 장절을 나눠 담배 농사의 단계별 주의 사항을 적는 한편, 담배의 문화사적 정리까지 시도했다. 가짜 담배 식별법에서 담배에 얽힌 전설, 심지어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법까지 소개했다. 담배 피울 때 쓰이는 12종의 도구도 하나하나 설명했다. 애연가들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하다.

그는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지 200년이 넘었고, 온 나라 백성이 모두 즐기는 기호품인데도, 정작 담배에 대해 정리한 저술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안타까워 이 책을 썼노라고 했다. 자신은 담배에 벽이 있어, 남의 비웃음도 아랑곳않고 이 작업을 한다고 적었다.

이옥은 《백운필(白雲筆)》이란 저술도 남겼다. 새, 물고기, 짐승, 벌레, 꽃, 곡식, 과일, 채소, 나무, 풀 등 모두 10개 부문에 걸쳐 164항목의 기사를 소개한 책이다. 자신이 직접 견문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채록한 것으로, 그의 관심 폭이 얼마나 다양했는지 알기에 충분하다. 꽃의 경우만 보더라도 당시 서울 지역 원예의 활황과 꽃시장의 존재에서부터 각종 화훼의 품종과 재배방법까지 상세히 적어 놓았다.

그는 늘 이런 종류의 글만 썼다. 정조는 문체반정의 와중에 특별히 그의 문체를 불온하다고 지목하여, 그의 과거 합격을 취소시키고 멀리 부산의 기장으로 군역(軍役)을 보내기까지 했다. 말하자면 체제의 검열에 걸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귀양 가는 길에서도 가만 있지 못하고 경상도 사투리의 특징과, 주택의 구조와 특산물, 도중에 만난 고적(古蹟) 등을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정리했다.

이덕무(李德懋·1741~1807)는 밀랍으로 매화를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잎은 도장돌에 잎사귀 모양을 파서, 종이를 넣고 눌러 말린 뒤 호호 불어 떼어내 가위로 오려냈다. 꽃은 밀랍으로 만들었다. 제작의 전 과정을 도판 설명까지 보태서 《윤회매십전(輪回梅十箋)》이란 소책자로 꾸몄다. 연암 박지원도 이 기술을 전수받아 자신이 직접 만든 조매(造梅)가 어느 한 구석이라도 부족하면 받은 돈을 환불해 주겠노란 보증서까지 얹어 돈을 받고 팔았다. 유득공은 밀랍 매화를 만드는 집이라 하여 납매관(蠟梅館)이란 편액까지 내걸었다.

전 같으면 완물상지(玩物喪志), 즉 쓸데없는 데 정신을 판다고 크게 야단 들었을 일을 이들은 거리낌 없이 했다. 담배나 앵무새, 비둘기 같은 미물에다 '경(經)'이란 말을 붙였다. 그 이전까지 경은 성인의 말씀에만 붙일 수 있는 표현이었다. 이들의 관심은 물고기와 곤충과 채소, 방언과 속담에까지 확산되었다. 세상이 크게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새로운 '경(經)'은 자체 검열로 솎아지고, 후손들의 염려로 걸러져 정작 자신의 문집에조차 실리지 못했다. 남은 것도 서문만 전하거나, 저자도 잊힌 채 필사본으로 떠돌다가 운 좋게 생존한 것들뿐이다.

그들이 했던 일은 오늘날도 아무도 하려들지 않는다. 누가 지금 판매되는 담배의 종류와 각각의 맛과 가격, 어떤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담배를 피우며, 상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책으로 쓰겠는가? 성냥과 라이터의 종류와 재떨이의 각종 생김새를 그림과 글로 정리해 남기려 하겠는가? 금연운동에 대항하는 요령, 애연가 클럽을 소개하고, 담배를 맛있게 피우는 방법을 정리하려 들겠는가?

어떤 미친 바보에게는 '담배에 관한 모든 것'도 수집 대상이었다

나는 강남의 술집에서 나눠주는 술집 광고 전단을 여러 해째 모으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이것도 나중에는 훌륭한 풍속사의 한 자료가 되리라고 했다. 서울과 부산과 대구의 광고 방식이 같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여러 해 모은 그의 자료는 웬 해괴한 짓이냐며 그의 아내가 박스째 내다버림으로써 무위로 끝났다. 하지만 18세기의 지식인들은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들의 방식은 지금 보더라도 참으로 신선하다. 확실히 전대의 지식인과는 정보에 접근하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