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 살던 무슬림 여인 베구나 알릭(52)에게 지난 10년은 긴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1995년 7월 11일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무슬림이 서로를 죽이는 유럽 최악의 '킬링 필드'가 벌어졌던 보스니아 내전 당시, 그는 세르비아계 군인들을 피해 남편과 두 아들이 숨어 있던 스레브레니차 주변의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베구나는 그들을 위해 빵을 담은 배낭과 짐을 꾸려주었다. 그게 마지막 이별이었다. 한 아들만 살아 돌아왔고, 남편과 나머지 아들은 영영 볼 수 없었다.

그날 세르비아계 군인들은 세르비아와의 접경지대였던 보스니아의 도시 스레브레니차에 진입했고, 무려 8000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 남성과 어린이를 무차별 학살했다.

11일로 스레브레니차 대학살이 10주년을 맞았다. 10주년 추도행사에 나타난 베구나는 "남편과 아들, 그리고 내 아버지가 실종됐다. 나는 죽은 아들이 편히 쉴 곳을 찾기 전까지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며 눈물지었다.

대학살 당시 14세의 아들을 잃은 마티마 부디(60)는 아들의 관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면서 "그들은 내 전 생애를 죽였다"고 외쳤다. "내 평생 소원은 죄인들이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마티마 역시 남편과 또 다른 아들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다.

10년 세월이 흘렀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42곳의 대량 매장지에서 시신 5000여 구가 발굴됐다. DNA 검사 등을 통해 이 중 203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아직도 20여 곳의 대량 매장지가 더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1일 추도행사는 생존자와 각국 고위인사 등 5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행사에는 알바니아·크로아티아·몬테네그로 대통령과 영국·프랑스·네덜란드·스웨덴·터키·불가리아·슬로베니아·마케도니아의 외무장관 등이 참석했다.


(파리=강경희특파원 khk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