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해냈다!"
링위에서 심판이 최재원(38)씨의 손을 번쩍 치켜들자, 그는 아들부터 찾았다. 58대57, 59대55, 60대55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이었다. 중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 용환이는 링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빠 수고하셨어요." 수줍음 많은 아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짧게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 눈은 아빠에 대한 자부심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최재원씨. 현재 직업은 환경미화원이다. 하지만 왕년의 권투 팬이라면 모르기 힘든 사람이다. 1988년 한국챔피언, 1989년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내리 따내고,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 동안 주니어페더급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11년전 세계랭킹1위… 38세 최재원씨 어젯밤 일본 현역 27세 복서에 판정승
이런 그가 10일 11년 만에 재기전을 가졌다. 서울시 중구 충무아트홀 특설링에서 열린 ‘한일 권투 라이벌전’이었다. 상대는 일본의 현역 복서 도리가에 슈사쿠(27). 전적은 15전9승5KO승. 키도 최씨보다 5cm 컸다. 20대 도리가에의 또렷한 복근과, 20일 만에 급작스럽게 10kg을 빼 늘어진 최씨의 배는 무척 대비됐다. 경기 시작 전 “옛날의 최재원이 아니야.” “나이는 못 속여. 어렵겠어”라는 수군거림이 관중석에서 들렸다.
'땡.' 시작 종이 울린 후 총 6라운드를 최씨는 도무지 어떻게 싸웠는지 모른다. 오로지 아들 용환이에게 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생각만 했다. 가끔씩 몸에 꽂히는 도리가에의 펀치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최씨는 상체를 흔들며 주먹을 요리조리 피했다. 4라운드 땐 라이트훅을 도리가에의 턱에 명중시켰다. 도리가에는 노장(老將)의 투혼 앞에 서서히 지쳐갔다.
일 끝나면 뱃살빼기 훈련
최씨는 지난 석 달간 매일 새벽 5시30분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청소일을 한 뒤 저녁 10시까지 운동을 했다. 술·담배에 찌든 몸은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운동을 마치고 오면 하늘이 빙글빙글 돌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아들에게 '한 번 패배가 영원한 패배는 아니다'는 사실을 몸으로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했다.
1994년 7월 WBA 주니어페더급 세계챔피언 결정전에서 3체급을 석권한 푸에르토리코의 강자 윌프레드 바스케스에 패한 후 권투계를 떠났던 그였다.
무작정상경 8년만에 챔피언
아들 용환이의 꿈은 프로야구 선수다. 초등학교 때는 1번 타자와 유격수만 맡았다. 그러나 중학교 진학 이후 최소 한 달에 100만원 이상 드는 훈련비용을 170만원 남짓한 최씨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카드 돌려 막기로 용환이의 훈련비용을 댔다. 카드빚은 이자에 이자가 붙어 6개월 새 3000만원으로 늘어났다.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결국 용환이는 야구를 그만뒀다. 실의에 빠진 용환이는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야구에 대한 꿈을 놓지 못해 용환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야구단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11년 전 바스케스에 지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나락으로 떨어졌던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게 아니었어요. 언제든 도전할 수 있거든요. 용환이에게도 지금 야구를 못하는 것이 영원히 야구를 못하는 것이 아니란 걸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시 글러브를 꼈죠."
최씨는 13세 때 권투를 배우고 싶어 고향인 전북 익산에서 670원을 달랑 들고 서울로 왔다. 자장면 배달부터 막노동까지 안해 본 일이 없었다. 체육관에서 먹고 자면서 '세계챔피언'만을 꿈꿨다. 결국 세계챔피언에 오르지 못한 그는 룸살롱 웨이터, 드라마 엑스트라 등을 하며 지냈다.
'권투 박사'의 두가지 소망
1997년 노점상 단속요원으로 일하다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됐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는 2000년 환경미화원이 됐다. "저는 제 삶에 만족합니다. 정년 때까지 환경미화원을 할 겁니다. 월 30만원짜리 월셋집에 살아도 아들과 함께 있어 너무나 기쁘고요." 그는 1998년 아내가 가출한 후 용환이를 혼자 힘으로 키워왔다. 남은 소망은 두 가지다. 아들이 다시 야구를 하는 것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권투를 가르치는 것. "전 초등학교 졸업이지만 권투는 박삽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돈 안 받고라도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