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하반기에 뭘 먹고 살까 고민입니다."
6일 모 시중은행의 서울 도곡동지점 A과장은 "핵폭탄을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관할 영업지역에 고급 아파트가 많아 상반기에 300억원 정도의 주택담보대출 실적을 올렸는데,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때문에 이제 망하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시중은행의 서울 서초동지점 B대리도 "지난주 10건의 주택담보대출을 했는데 이번 주 들어서는 단 한 건도 못 올렸다"며 "하반기 목표액 40억원을 어떻게 채울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A과장과 B대리의 사례를 어떻게 봐야할까? 정부 부동산 정책의 '억울한 피해자'로 봐야할까?
우리나라 은행들은 그동안 '전근대적인 영업'을 해왔다는 지적을 무수히 받아왔다. 쉬운 돈벌이가 있으면 우르르 몰려가서 제살 깎기 경쟁을 벌이고, 정부가 뭔가 제동을 걸면 다른 돈장사를 찾아 일제히 몰려가는 모습을 되풀이해왔다. 올 상반기 은행들이 10조원을 풀었다는 주택담보 시장은 그야말로 떼일 염려가 거의 없는 돈장사였다.
그러나 은행들이 아파트촌(村)에서 백병전(白兵戰)을 벌이는 동안, 금융 본연의 기능인 생산자금 공급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아파트 구매자 대열에 밀려 고리(高利)의 이자를 써야했다. 며칠 전 한국은행이 20년 만에 시설자금 대출한도를 책정한 것도, 시중은행들의 기업대출을 늘리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정부의 제동으로 주택담보시장이 막히자, 벌써부터 은행권에선 "하반기에는 수익증권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느니 "가계대출을 늘리겠다"느니 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은행들의 행태를 보면, 과연 한국이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치고 동아시아의 금융허브가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이길성·경제부 atticu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