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펄프 픽션'을 보고 전율하고, 2003년 '킬 빌'에 환호했던 당신. 바로 당신이 열광할 만한 '장난 아닌' 도시가 30일 모습을 드러낸다. 누아르 영화 속 고독한 마초들이 그렇게 폼나 보였다는 분, 빨간색·노란색만 유독 튀는 미국 코믹북 좀 보셨다는 분까지… '씬시티'의 뒷골목이 당신들을 초대한다.
'죄(Sin)'라고 불리는 이 도시. 흑백 화면 속에 여자의 붉은 드레스만 도드라지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은 자신의 악동기질을 단박에 드러내는 이 5분짜리 오프닝신으로 10여년간 '씬시티'의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았던 원작 만화가 프랭크 밀러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브루스 윌리스·미키 루크·일라이저 우드·조쉬 하트넷 등 쟁쟁한 스타들을 1주일 만에 포섭한 로드리게스가 쿠엔틴 타란티노까지 끌어들여 그려낸 도시의 밤 풍경은 극히 선정적이고, 더없이 폭력적이며, 그러면서도 못말리게 순정적이다.
영화는 어둠 속에 고군분투하는 세 남자의 행적을 좇는다. 소녀 낸시(제시카 알바)를 구하기 위해 거물 상원의원의 아들 로크(닉 스탈)와 대결하는 형사 하티건(브루스 윌리스), 하룻밤을 보낸 여인 골디(제이미 킹)가 살해되자 피의 복수에 나서는 '거리의 주먹' 마브(미키 루크), 창녀 셜리(브리트니 머피)를 괴롭히던 재키보이(베네치오 델 토로)를 뒤쫓다가 창녀촌을 곤경에 빠뜨리는 사진작가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웬).
세 남자의 공통점은 무지막지한 파괴력의 근원을 오로지 한 여성을 향한 사랑에서 찾는다는 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노병은 죽고, 여자는 사니 공정한 거래 아닌가"라고 읊조리는 하티건, 피투성이가 된 채 "멋지게 갚았지, 골디?"라고 중얼거리는 마브는 잔혹한 폭력의 향연을 감히 '로맨스'라고 선언한다. 유치하다고? 맞다. 그러나 만화 컷을 그대로 옮겨낸 흑백 영상은 눈을 현혹시키고, 낮은 톤의 진지한 내레이션은 이 '만화적 허구'에 묵직한 입체감까지 부여한다.
물론 때때로 비위도 뒤틀린다. 총으로 성기를 쏘고, 산 채로 팔다리가 뜯겨나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큰 충격이 남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관객이 목도하는 것은 만화의 한 페이지이기 때문이다. 피가 희게 처리돼 잔인성이 희석되기도 했지만, 목을 매달고 전기충격을 가해도 죽지 않는 캐릭터들은 애당초 '리얼리티'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니냐고? 대결과 극한뿐인 이 흑백의 도시에서 분홍색이나 연두색을 기대했다면 당신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천사와 악마가 한 침대에서 뒹굴고, 사랑과 죽음이 서로 방아쇠를 당기는 이 죄 많은 도시. 단세포적이라고 손가락질당해도 여전히 유혹적인, '씬시티'는 분명 '맛있는 불량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