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첫 주말은 '호러의 주말'. 이번 주말 개봉하는 여섯 편의 영화 중 절반인 세 편이 공포 영화다. 올여름 한국 호러의 첫 테이프를 끊는 김용균 감독의 잔혹 동화 '분홍신', 사진을 소재로 한 태국의 호러 '셔터', 뉴욕 외곽의 일가족 살인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아미티빌 호러'가 그들이다. 금요일 밤, 당신은 어떤 공포에 사로잡힐 것인가.
(편집자)
이렇게 시작해 보자. 엄마의 분홍색 하이힐을 훔쳐 달아난 어린 소녀. 수십 층 빌딩 옥상의 한 쪽 모서리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소녀의 엄마가 구르는 듯 달려간다. 가까스로 발목을 낚아채는 엄마.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소녀의 종아리에 천천히 가로로 금이 간다. 곤두박질하는 소녀. 엄마의 두 손에 남은 건, 소녀의 발목뿐이다. '분홍신'에 산발한 귀신은 출연하지 않는다. 죽은 아이가 TV브라운관 밖으로 기어나오는 것도 아니다. 당신을 현혹하고, 동시에 소름으로 이끄는 것은 하나의 자극적인 오브제, '분홍신'. 탐욕과 색정(色情)을 도발하는 이 수상한 하이힐은,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여인의 욕망을 수면 위로 길어올린 뒤, 그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풀기없는 결혼생활을 억지로 버텨내던 30대 중반의 안과 의사 선재(김혜수)는 남편(이얼)의 외도를 알고, 여섯 살 딸 태수(박연아)와 집을 나온다. 어느 날 우연히 지하철의 연결통로에서 발견한 분홍신. 훔치듯 주워온 그 교태로운 힐을 신고 난 뒤 선재는 처음으로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다. 남성의 틈입을 전혀 허용하지 않던 이 자폐적인 여인은 이제 자신의 안과병원 인테리어를 맡은 인철(김성수)을 먼저 유혹할 만큼 세계관의 변화를 보인다.
'분홍신' 공포의 근원은 '전염'과 '탐욕'으로 요약된다. 보는 순간 참을 수 없을 만큼 갖고 싶은 매혹의 오브제. 여섯 살 난 딸이건, 친동생만큼 사랑하는 후배건 그 탐욕에는 양보가 없다. 하지만 원혼의 한이 서린 슬픈 신발은, 자신을 '뺏는 자'마다 죽음의 한 길로 사정없이 인도한다. 저주는 노소를 불문하고 전염되고, 탐욕은 이제 파멸의 원동력이다. 죽어야 벗을 수 있는 분홍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한 특수 효과의 힘으로 되살아난 '잘린 발목'과 함께 잊기 힘든 시각적 공포를 안긴다.
안데르센 잔혹 동화(童話)에 기반한 전복적 상상력은, 모성애와 여성으로서의 욕망 사이의 갈등이라는 불온한 드라마를 추가로 끼워넣으며 육중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새로운 창안(創案)이라는 덕목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김용균 감독은 호러라는 장르의 관습적 성감대를 예민하게 장악한 뒤 관객들을 원초적 자극 속으로 몰아넣는다. 마주 걸어오는 상대방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음산한 아파트의 복도, 마치 먹이를 노리는 상어의 입처럼 개폐를 반복하는 지하철의 출입문 등 참신한 공간 연출은 압도적인 분량의 핏물과 더불어 객석의 시각적 공포를 극대화한다.
오랫동안 호러와 김혜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코미디에서 소비되던 건강한 유쾌함 이상을 이 여배우에게서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단편 '메모리즈', 김인식 감독의 '얼굴 없는 미녀' 이후 김혜수는 분명 자신의 전형성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여년 만에 잘랐다는 그의 머리만큼이나 '분홍신'의 김혜수는 분명 과감하고 정돈된 캐릭터를 보여준다. 영화 전체를 균형적으로 통제하는 연출과 만나, 김혜수는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캐릭터와 포개졌다.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