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슈케크 시를 떠나 이시쿨 호수로 가는 길에서 나는 바자르(시장)와 부딪쳤다. 독마크트. ‘때리겠다’라는 이름의 바자르다. 거의 전쟁에 가까운 활기가 건강한 여인네들의 얼굴, 몸짓, 목소리와 흥정에까지도 넘쳐흐르고 있었다.

'전장(戰場)은 속여도 시장(市場)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거기에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바자르가 가진 아득한 옛날부터의 그 '기운 생동'은 유명한 것이다. 독마크트도 역시 그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백남준(白南準)은 세계적 팝 아티스트다. 그런 그가 지난 시절 IMF 때 기이한 칼럼 한 꼭지를 국내 신문에 발표했다. 'IMF가 아무리 거센 파도로 몰려와도 동대문·남대문 시장은 끄떡도 안 한다'는 주장이다. 왜?

동대문·남대문 시장의 중소상인들은 지방의 도소매 상인들과 아주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계(契)와 같은 호혜의 형태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술가인 그가 그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그는 큰 시장 상인이었던 부친과 부친의 동료들 사이에 오가는 시장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왔다 한다.

시장이란 산 생물이다. 생태학에서 생명 지표라고 부르는 것과도 흡사하다. 나는 젊어서 한때 이른바 '원주 캠프'에 속해 있으면서 러시아와 동유럽을 여행하고 온 여러 외국 수사신부(修士神父)들로부터 공산권 안에 새벽의 벼룩시장이 서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때 이미 공산주의의 종말을 감지했다.
'계'와 '벼룩'! 이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가진 것이 시장이다. 그런데 바로 이 얼굴을 다름아닌 그 성스러운 이시쿨 호숫가에서 발견한 것은 내게 있어 단순한 놀라움을 넘어 하나의 공포였다. 나의 앎으로는 그것을 제대로 해명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르마르크트라고 불리는 호숫가의 그 바자르. 멀리 한국에서까지 원정 온 상인들을 포함한 온갖 빛깔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옛날 달을 쳐다보고 교환의 시기를 알아냈던 바자르 꾼들처럼 그렇게 욕망, 호기심, 그리고 들뜬 활기로 가득 차 마치 성스러운 소명을 집행하듯 소리소리 지르며 흥정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쉽사리 설명 안 되는 이상한 곤혹을 안고 비슈케크로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온 바로 그 이튿날 아침 일찍 그곳의 중앙시장 격인 오쉬 바자르를 찾았다. 중심부인 이 공설 시장은 배급제 시장으로서 한눈에 벌써 죽은 시장이었고, 주변 큰길가 좌판 장수들이 생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어려운 시장에 관한 호기심을 일단 접기로 하고 다음 일정인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움에 관해 한 토막의 시적인 산문을 쓸 요량으로 타슈켄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인가? 비행기 왼쪽 창밖으로 아득한 파미르의 눈덮인 고원이 전개되면서 기이한, 참으로 기이한 신성함에 사로잡혀 들어가는 내 뇌수의 얼굴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신성함은 다름아닌 엄청나게 역동적인 바자르의 춤, 그것이었다.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양 건축물로 손꼽히는 레기스탄 광장과 주변에 있는 3개의 메드레세. 중세에 이슬람 신학교와 카라반들의 숙소가 있었던 곳이다

시장은 신성하다? 타슈켄트에서 하루 묵은 뒤 곧장 사마르칸트를 향해 다섯 시간을 달렸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사막과 초원의 비상한 아름다움은 과연 사마르칸트의 어떤 시 구절로 눈부시게 피어날 것인가?



▶▶사마르칸트 시 입구에 '사마르칸트'라고 쓴 거대한 입간판이 있고 그에 겹치면서 나직한 뒷구릉 위에 알파벳으로 흰 돌들을 쌓아 만든 큰 글자들이 보였다. 초폰아타(CHOPON OTA). 내 뒤에 탄 이쪽 방면 연구가인 양민종 교수(부산대)의 놀란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친다.

"초폰아타는 촐본아타입니다. 졸본(卒本)의 아버지요 고향이니까 바로 고구려의 근원입니다."

아아 졸본의 고향! 아아 고구려의 근원! 아시쿨 호숫가에서도 보았던 그것이 왜 이곳에까지 새겨져 있는가? 물론 나는 다음날 사마르칸트를 떠날 때 아프라시압 박물관에서 7세기경 조로아스터교 시절에 그곳에 온 두 사람의 새 깃털 모자를 쓴 고구려 사신의 프레스코 벽화를 통해서 그 역사적인 까닭을 대강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진정한 놀라움은 그것이 가진 문화적 의미, 그 신화적 원형을 발견하면서부터 왔다. 사마르칸트 시내 초입에서 아미르 티무르 대제의 한 황후를 기념하는 비비하눔 사원(寺院) 바로 앞마당에 시끌벅적 수백 명 장꾼들의 바자르가 열리고 있는 현장에서 그것을 발견하면서부터 본 것이다, 그 신화적 원형을.

신시(神市)! 신성한 시장. 그렇다. 그것은 다름아닌 계와 벼룩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교환과 함께 인격교환이, 인격교환과 함께 생태계의 보전이, 생태계의 보전과 함께 성스러운 우주에 대한 영성적 경외심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시장! 교환과 호혜의 이중 교호 결합! 옛 시장이요 또한 새 시대의 시장!


우즈베키스탄의 어린이날인 6월1일을 맞아 사마르칸트에 있는 한 유원지에서 회전목마를 타고있는 어린이들

▶▶새롭고도 오래된 사마르칸트의 시(詩),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움의 극치인 '굴꿀'(사막의 꽃)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장엄한 비비하눔과 함께, 재판·축제·카라반들의 숙식과 신학교가 거의 동일한 기능이었던 레기스탄의 그 웅장한 황금의 돔이 다른 것 아닌 하일리야(전심전력의 자선 행위)의 호혜와 이중 교호 결합된 바자르의 교환 위에 세워진 현실적인 우주 비전임을 깨닫는 데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사마르칸트 주립대학 부총장 사하로브 박사의 말이다.

"이슬람뿐 아니라 동방의 모든 문화에서는 성스러운 궁정과 현실적인 시장이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 전통이다. 사람들의 물방울이 모여드는 물인 바자르에 성소(聖所)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바자르는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아는 장소이고 사람 사이에 서로 우정을 느끼는 장소이며, 참다운 평화 속에 쉬는 장소이자 차이(茶)를 가운데에 놓고 서로 소식을 물으며 사귀는 장소이니 가장 성스러운 곳이다. 교환은 이미 그곳에서는 자선이요 선물이요 증여(贈與)이며 호혜(互惠)인 것이다."

"고구려·꼬려와의 관계는 아프라시압 말고도 여러 곳에서 증명된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우리의 헤어질 때 인사말은 '오몽 블림'이다. '오몽 블림'은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말이다."

헤어질 때 나는 사하로브 박사에게, 그리하여 페르가니 계곡과 안디잔의 모든 고통, 죽음을 포함한 우즈베키스탄과 사마르칸트 전체를 향해 웃으며 발음했다. "오몽 블림!" 그 순간 내 마음 저 안쪽에서 동학 최해월(崔海月) 선생의 다음 한마디가 문득 떠올랐다. "장바닥에 비단이 깔릴 때!" 그때가 곧 후천 개벽, 아시아의 르네상스인 것이다.

(김지하·시인·사단법인 생명과평화의길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