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 한국에서 열린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는 여성학이 '과학기술혁명과 여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지식은 물론 부와 권력이 과학기술에서 나오는 21세기에 여성은 남성 과학자들이 대부분인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과거의 생물학적 성별 개념이 파괴돼 가는 현실에서 여성학, 여성운동이 할 일은 무엇인가. 난자 채취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 배아 연구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할 우려는 없는가.
폐막을 하루 앞둔 23일 총회에서 참석자들은 '현재의 과학기술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미국의 유명한 과학철학자인 산드라 하딩 UCLA대학 교수는 "남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근대적인 반면, 여성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그래서 비근대적이라는 정치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이상 현재의 현기증나는 과학기술이 낳을 열매는 전적으로 남성들의 소유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리아 반더 유네스코 '중남미 여성과 과학기술국' 의장은 "과학기술의 중대한 프로젝트에서 여성들이 배제되고 있는데도 페미니스트들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핫이슈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였다. 21일 열린 '성과 생명공학' 분과토론은 눈길을 끌었다. 조주현 계명대 교수는 "생명공학 연구는 여성을 어머니가 아닌 단순한 난자 공급자로 본다. 난자 매매가 이뤄질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산업발전을 위해 한국의 수많은 여성들이 공장 노동자로 전락했던 1960년대처럼 국가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위해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인간화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케리스 톰슨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전세계의 과도한 열광과 집중에 우려를 표시했다. "개인적으로는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가 도구화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난자제공 시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난자 제공자에 대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한 부시와 달리,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캘리포니아에서는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철저히 보호할 자문위원제도를 따로 운영한다"고도 덧붙였다.
22일 열린 '과학교육에 있어서의 젠더 이슈'라는 주제의 분과토론에서는 여학생을 과학기술 분야로 대거 진출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쏟아져나왔다. 인도 학자 암리타 파텔은 "인도 여성 과학도들의 전공이 대부분 소프트 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식물학, 동물학, 인류학 등에 치중돼 있는 것은, 과학자인 동시에 주부와 엄마의 역할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컴퓨터과학이나 엔지니어링 분야로의 여성 진출을 늘이려면 그들이 마음놓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사회환경, 교수들의 적극적인 멘토링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생물학적 성(性)의 경계가 무너질 경우 여성학의 어젠다는 어떻게 변화할까. 총회 사회를 맡은 피로미나 스티디 웰슬리대학 교수는 "여성은 물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여성학과 여성운동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그 해야 할 일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