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대개 두 부류의 남자가 있다. 고기 굽는 불판 앞에서 소주는 따라 줄지언정 고기는 절대 뒤집지 않는 남자와 말하지 않았는데도 쌈까지 싸서 불쑥 눈앞에 들이미는 남자. 전자의 경우 이론적으로 여성 동지들은 그들과 놀지도 자지도 눈을 마주치지조차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개 여자들은 활활 타오르는 숯불 앞에서 기꺼이 혼자 고기를 굽고 남자의 밥그릇에 찬을 얹어주며 행복해한다. 단 연애를 하는 동안에만.
내겐 영화의 주인공인 유림, 유림이라는 남정네의 캐릭터가 제일 생생하고 불쾌하고 흥미롭고 역겨웠다. 박해일이 연기하는 유림이 아니라면 과연 저 사내에게 고기를 뒤집어 주고 싶을까. 뻔뻔하고 느물대고 칭얼대는, 쪼잔하게 입체감 있는 저 사내의 몰골. 이름처럼 붉은색 옷만 입고 나오는 저 매력적인 여자 '홍'이 유림과 연애에 빠진다는 게 설득되어야 하는데, 사실 그게 잘 안 되는 거다. 감독이 자꾸 홍의 의사 애인이 속물이라고 충분하고 자상하게 주석을 달아 주어도 수학여행 가서 반 강제적으로 살을 섞게 만드는 남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유림은 단돈 몇 푼에 벌벌 떨고 벤치에서 옷을 입고 있는 여자 앞에서도 그 여자의 옷을 벗은 모습을 떠올리는 그런 종류의 남자이다.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현실이 코앞에 덮쳐왔을 때 그가 꼬리를 내리고 사태를 어영 부영 마무리하려 드는 것은 현실감 있는 설정이었다. 그가 우리 같은 남자, 현실 속에 돌아다니는 남자라면 거기서 끝났어야 한다. 하지만 유림이 홍의 마음까지 얻어 낸다는 것은, 눈길 한번에 만나는 여자마다 여관에 들어가는 홍상수식 판타지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벤치에서 옷을 입고 시작했는데, 마지막에 가서는 침대에서 옷을 벗고 끝이 나다니, 으윽, 말도 안 된다. 길거리에서 다시 만날까 겁이 나는 놈 앞에서 웬 순정이냐. '연애의 목적'을 보니 오히려 갈증이 더 생겼다. 아… 연애하고 싶어라. 몰래 피우는 담배보다 맛있는 연애. 남자들은 '잔다'고 말하고 여자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착각하는 도둑 연애. 비록 팬티 한 장만 입고 문 밖으로 쫓겨나 남편에게 싹싹 빌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그럴듯한 남자에 대한 판타지.
(심영섭·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