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그날, 포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했는데, 눈물은 내 눈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분단된 조국의 가장 큰 숙제는 분단의 극복일 텐데, 아마도 무의식 저 바닥에서는 그건 불가능한 숙제라고 체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분단은 영원한 게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예감이 고개를 쳐든 것이었다. 기분 좋은 눈물, 기분 좋은 예감이었다.

여기까지, 얼마나 어려웠는가. 민족공조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처음으로 천명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뒀던 1994년 여름엔 정상의 한 축이었던 김일성 주석이 세상을 떠나고, 그날의 만남으로 분단체제의 마지막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날도 머지 않았다고 들떠 있을 때는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서 대북 강경책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통일로 가는 길의 도저한 저 허방들은 통일은 무슨 통일, 가난한 빨갱이들하고, 하면서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둔감하고도 이기적인 내부의 허방들을 만나 자꾸만 깊어지고, 통일에의 꿈은 그만큼 지리멸렬해져 가는 듯했지만, 문득문득 가슴이 저려오는 그날의 기억 저 편에 있는 그 무엇은 세계는 위험해도 우리는 한민족임을 일깨우고 있었다.

사실 분단의 그늘에 숨기에는 우리는 얼마나 비슷비슷한지. 그때 벌써 분단 50년이었는데도 언어가 통하고 역사가 통하고 생김새가 통하고 눈물이 통했다. 한순간의 만남이 지난 50년을 단숨에 압도해버린 이 질긴 인연을 어이 하나. 그날의 기억은 희망의 등대로 변해 위험한 세계 속에서 조심스럽게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그 '위험한 세계' 속에 북핵이 있고, 북한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해온 부시 행정부가 있다. 그리고 아닐 거야, 하면서도 우리끼리는 일으킬 리 없는 한반도 전쟁 위협에 대해 생각하도록 요구받는 '대~한민국'이 있다.

한민족인 우리는 어이 해야 할까? 그날의 주인공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강조한다. 북핵포기만 주장할 게 아니라 북핵포기와 동시에 북한이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목록을 챙겨줘야 한다고. 여전히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고 경제제재를 통해 숨통을 막으면 누가 저항하지 않겠는가. 테러집단으로 규정한 그 자체가 '너'와는 공존할 수 없다는 선전포고인데. 그 상황에서 유순해지고 고분해지는 것은 죽음이다.

김 위원장이 우리측 대표들을 만난 것은 그보다 앞서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만남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그 만남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상당히 의식한 자세를 취했다. '미스터 김정일'이라는 호칭에서도 드러나지만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고, 핵무기만 포기한다면 에너지도 지원하고 북·미 관계도 정상화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여기까지는, 또 얼마나 어려웠는지. 거기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힘을 보탠 많은 이들이 있었다. 한 예로 억울하고 기막히게 죽은 효순·미선양 사건이 터졌을 때 책임 없다고 오만하게 발뺌하던 미국이 전 국민적인 저항에 놀라 우리를 겨우 인정해서 뒤늦게 사과한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에 대해 그렇게 무심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노 대통령이 가자마자 미군 트럭의 교통사고에 대해 발빠르게 사과부터 했다. 미국이 의식하는 것은 한국 정부라기보다는 국민적 정서고, 그리하여 국민적 정서에 바탕을 둔 대북정책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짜 한·미 공조의 필요조건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