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간지 포브스가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유명인사'로 선정한 미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는 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자랑하는 '책 읽는 여자'다. 21년째 토크쇼를 진행하며 미국인들을 울리고 웃겨온 윈프리는 영화배우, 잡지 발행인, 기업인으로도 눈부신 성공신화를 이뤘다. 기본적으로 윈프리의 경쟁력은 '입심'이다. 하지만 더 무서운 저력과 영향력은 그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한다'는 데서 나온다.
윈프리는 말한다. "만일 당신이 내일 아침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깨어나고 싶다면 잠들기 전에 책을 펴들고 단 세쪽이라도 읽으라"고. 책에 관한 한 윈프리는 '미다스의 손'이다. 한때는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에 소개되기만 하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서점에서 '윈프리가 추천했다'는 딱지가 붙은 책들은 언제나 진열대의 전면을 차지하곤 했다. 학교숙제가 아니라면 아무도 읽지 않을 고전이 어느날 갑자기 서점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면, 알아보나마나 윈프리의 입김 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미국 출판계를 주름잡는 '책의 여왕'에게 감히 도전장을 낸 사람이 있으니, 다름 아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책이라고는 성경 빼고 몇 권 읽지도 않았다는 부시 대통령이? 사연을 들어보시라.
지난 13일 부시 대통령이 탈북자 출신의 강철환씨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만난 지 이틀 만에, 북한의 강제수용소 실태를 고발한 강씨의 책 '평양의 어항'은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목록 179위에 뛰어올랐다. 부시 대통령이 강씨를 만나기 전 이 책의 판매순위는 100만 등이 될까 말까였다.
구(舊)소련의 정치범 수용소 실상을 세상에 알린 전 이스라엘 장관 나탄 샤란스키의 책 '민주주의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이 책은 부시가 저자를 백악관으로 불러 만난 후 부시 2기의 '민주주의 확산론'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극했다. 그래서 요즘 워싱턴 사람들은 "이러다가 '부시의 북클럽'도 곧 나오는 것 아니야?"라고 농담을 한다.
강씨가 부시 대통령을 만나고 귀국하던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만남이 계기가 돼 더 많은 사람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 기여하게 된다면 그게 정말 의미있는 일이지요."
차분하게 전날 만남의 의미를 정리하는 강씨의 말을 듣는 동안 몇 번이나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올라 목이 메었다. 저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닷새 전에 "진정으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책이나 이론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범 수용소에서 굶기를 밥먹듯하며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19살 때 중국으로 탈출해 제대로 먹기 시작하자 1년 만에 키가 10cm 이상 자랐다는 강씨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세상의 하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말을 토해내지만, 정말 세상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경우란 드물고도 드물지 않은가. 그래서 강씨가 책 한권을 통해 북한 인권문제라는 화두를 미국 사회에 던지고 떠난 날, 모든 목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고 모든 글이 낙서로 보여 도무지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