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수많은 독립 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서대문 형무소. 이곳의 사형수 1호는 누구일까. 그 비운의 주인공은 구한말 의병 대장 왕산(旺山) 허위다. 정미의병 때 전국 13도의 의병들을 규합해 서울로 진격했던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한 인물.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은 우리가 자주 듣는 도로명으로 오롯이 남아 있다. 상습 정체구간으로 교통 정보 방송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왕산로’(서울 동대문~청량리 구간). 왕산이 진공 작전 때 진격하고자 했던 코스로, 그의 이름을 땄다.
광복 60주년을 맞아 왕산을 재조명해보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EBS는 22, 23일 왕산의 일생과 그의 기개에 감명 받았던 일본 헌병 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의 얘기를 담은 창사특집 2부작 다큐멘터리 ‘왕산가 사람들’을 방영한다. 1편 ‘의병장의 후손으로 살아가기’, 2편 ‘잊혀진 후예들’.
왕산은 1908년 제2차 서울 탈환작전 도중 일본 헌병대의 급습을 받고 체포된다. 당시 허위를 심문했던 아카시 모토지로는 조선에 헌병경찰 제도를 도입해 헌병 통치를 주도했던 강경파. 그러나 왕산의 강직한 품성에 감명받아 일본의 입장에서 ‘폭도의 수괴’였던 그를 ‘국사(國士)’로까지 칭하며 이토 히루부미에게 구명을 호소했다.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아카시 모토지로의 손자 아카시 모토쓰구를 찾아간다. 그는 조부의 전기문을 직접 보여주며 왕산의 일화를 생생히 전해준다.
한편 프로그램에서는 조부의 의병 활동 전력(前歷)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등지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왕산의 후손 모습도 보여준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화물트럭 운전 등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그들은 이미 그곳의 국민이 되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연출을 맡은 김동관 PD는 “애국 지사의 가문이 제대로 평가받기는커녕 독립 운동 경력으로 인해 풍비박산 나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봤으면 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