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환

피로스(Pyrrhus)는 기원전 3세기쯤 북부 그리스 지방에 있던 에페이로스의 왕이다. 한니발 장군이 자신보다 뛰어난 장수로 알렉산더 대왕에 이어 피로스를 꼽을 정도로 병법(兵法)의 대가였다. 제2의 알렉산더가 되기를 원했던 그는 신생 강국 로마와 싸워 두 번이나 이겼다.

그러나 두 번째 전투에서는 아군의 피해가 너무 컸다. 환호하는 부하들에게 피로스는 "이런 승리를 다시 거두었다가는 우리도 망한다"고 말했다. 이후 '실속 없는 승리' 또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간신히 얻은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로마와의 세 번째 전투에서 대패(大敗)한 피로스는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현 정부가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경제정책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부동산 정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28개월 동안 부동산 문제에 대해 공식 석상에서만 28차례 발언했다. 한 달에 한 번꼴이어서 "임기 중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는 대통령의 대(對)국민 약속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과 홍수처럼 쏟아지는 부동산 안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집값과 땅값의 오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 살아날 것처럼 보이던 경기마저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여당 내에서도 "정부가 부동산 가격 잡으려다가 경기까지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요즘 우리 경제는 정책을 펴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부동산시장은 과열 기미를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경기는 이륙시키고 부동산시장은 착륙시켜야 하는 상충관계(trade-off)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착륙이 순조롭지 못할 경우 경기는 더 나빠지고 결국에는 집값도 급락하는 악순환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1990년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의 일본 경제가 바로 그런 경우다. 부동산시장은 전체 경제의 한 부분이다. 게다가 400조원이 넘는 부동(浮動)자금이 부동산(不動産)을 부동화(浮動化)하는데 그 누구도 이길 재간은 없어 보인다. '풍선효과'와 '두더쥐효과'도 그래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부동산시장의 거품 여부를 보다 정확하게 짚어볼 때다. 아직 거품이 아니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서울지역 아파트 가격이 1990년대 초반과 비슷하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또 거품이 있더라도 서울의 강남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을 정부가 과잉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강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겨냥한 재건축 규제와 같은 정책적 악수(惡手)가 집값을 오히려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처럼 강남 또는 부동산이라는 빈대를 잡으려다 우리 경제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설사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더라도 '피로스의 승리'가 될 뿐이다. 경제에서 발생하는 거품은 어느 정도 커지다가 터지게 마련이다. 특히 거품이 강남 등 일부 수도권의 국지적 현상이라면 모르는 척 내버려 두는 것도 방법이다. 빈대도 뛰어오르고 또 뛰어오르다가 천장(거품)에 다다르면 제 풀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참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청와대와 정부가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