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여성학의 지형이 바뀐다. 20세기가 남성과의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일궈내기 위해 투쟁으로 매진한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양성이 공존하며 멸종 위기의 지구 생태계를 살려내는 법, 이라크 전쟁으로 되살아난 군국주의에 맞서 세계 평화를 일구는 전선에 세계 여성들이 손을 잡겠다는 것이다.

19일부터 24일까지 이화여대·서강대·연세대 등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릴 세계여성학대회(IICW)는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는 자리다. 80개국 3000명의 세계 여성 리더들이 모여 '여성 유엔총회'로 불리는 이번 대회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서(Embracing the Earth):동-서, 남-북'. '지구를 껴안는다'는 원제목에서 읽혀지듯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고발보다는 공존의 개념에 방점을 찍었다.

500개 세션에서 무려 2100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그중에서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젠더와의 관계를 다룬 논문들이 핫 이슈가 될 전망이다. 21일 '성별과 생명과학'이란 주제로 4개 국 여성학자들과의 세션을 조직한 윤정로 KAIST 교수는 "생명공학의 혁명적인 발전으로 남성과 여성이라는 과거의 성별 개념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여성학, 여성운동의 할 일은 무엇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회 4일째인 23일 총회 연사로 나설 네덜란드 생태학자 아이린 덴켈만은 "하나뿐인 지구를 살려내는 것은 생명과 생태환경에 거시적 안목을 지닌 여성들에게 달려 있다"는 내용으로 에코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아시아에선 첫 개최국이 된 서울대회에는 세계 여성학계의 거물들이 대거 입국한다. 국제 인권운동가 거트루드 몽겔라 범아프리카 의회 의장을 비롯해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아이린 덴켈만 교수, 페미니즘 과학철학으로 명성이 높은 산드라 하딩 UCLA대 교수, '일본군 위안부 논쟁'으로 유명한 우에노 치즈코 동경대 교수, 신시아 인로 미국 클라크대 교수 등이 내한한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장필화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이 주도해 아시아 8개국 공용 여성학 교과서를 집대성할 만큼 아시아 여성학의 발전 현황을 보여줄 이번 대회는 여성학의 탈(脫)서구화를 상징하는 기폭제로 역사에 회자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