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명의 여인네가 맑은 계곡물에 나와 앉아 몸을 씻고 있다. 저고리를 훨훨 벗어던지고 가슴을 훤히 드러낸 차림새에서 해방감이 잔뜩 묻어난다. 나무에 걸린 그네에는 또 다른 여인이 한 발을 올려놓았다. 그 옆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여인은 막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모양이다. 그림의 압권은 바위 틈에 숨어 여인들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훔쳐보는 남자들의 횡재한 듯한 표정이다. 신록이 우거지고 생명이 약동하는 조선의 단옷날 풍정(風情)을 풍속화가 신윤복의 그림은 유머스럽게 전해준다.

▶동양에선 옛날부터 3월 3일, 7월 7일, 9월 9일 등 홀수가 겹치는 날을 양기가 있는 길일(吉日)로 쳐왔다. 그중에서도 5월 5일은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꼽혔다. 모내기와 씨뿌리기 등 1년 농사 준비를 끝낸 뒤 잔치를 벌이며 풍년을 기원하던 농경사회의 풍습이 음력 5월 5일의 단오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단오는 한국 중국 일본에 보편적인 명절이지만 세 나라는 각자의 문화와 풍토를 반영한 독자적인 단오 풍속을 발전시켰다. 우리의 단오축제 중 대표적인 것이 강릉(江陵)단오제다. 음력 3월 20일 제사에 쓸 술을 빚는 것으로 시작돼 한 달 넘게 열리는 강릉단오제는 이 지방 고유의 신화, 제례, 굿, 음식, 놀이들이 어우러진 종합 문화축제다.

▶중국은 단옷날 용 모양을 한 배를 젓는 용주(龍舟)시합을 벌이고, 연꽃 잎이나 대나무 잎에 싼 찹쌀밥(쫑즈·?子)을 먹는 풍습이 있다. 중국 고대 초나라 때 재상이자 시인인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관직에서 쫓겨나자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었는데 그 날이 5월 5일이었다. 사람들이 물속의 굴원이 배고플까봐 찰밥을 지어 강물에 던지자 물고기들이 모두 먹어 버렸다. 그래서 굴원만 먹을 수 있게 나뭇잎으로 찰밥을 싸서 던졌고, 이게 단옷날 쫑즈를 먹는 풍속의 기원이 됐다는 게 중국 설명이다.

▶강릉시가 한국의 독특한 문화행사로 이어온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신청하자 중국 학계 일각에서 시비를 걸고 나왔다. "단오절은 동아시아 공동의 문화유산이므로 한·중 공동으로 신청하자"는 것이다. 중국은 작년에는 단오절은 중국 고유의 명절인데 한국이 강릉단오제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록하려는 건 '문화 약탈'이라고 주장했었다. 중국은 우리의 단오와 자기네 단오가 이름과 날짜만 같을 뿐 풍속의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모른체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이 바로 음력 5월 5일 단옷날이다.

(김태익 논설위원 tik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