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길을 떠나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값싼 분석처럼, 단계의 문제도,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스토리 우대의 서사주의가 광포한 망토를 휘날리고 있을 때에도 "역시 소설의 본령은 작가의 미학에 있어야 한다"는 작은 목소리에 동의하는 독자가 계신다면, 김지원의 이번 소설을 결코 놓치지 말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줄거리는 복잡하지 않다. 4년째 약혼 상태에 있는 서른한 살 상호와 스물두 살 영희가 여행을 떠나는 대목이 시작이다. 영희는 열여덟 살 때 상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그를 알게 됐다. 4년 뒤 두 사람은 한 방에서 살림을 차릴 정도로 발전한다. 그러나 상호의 부모는 궁극적으로 둘 사이가 맺어지는 걸 원치 않는다. 이번 길은 부모의 압력에 굴복한 상호가 영희를 버리려고 떠나온 고려장(高麗葬) 같은 여행인 셈이다.
둘은 '다정한 민박집'에 들어간다. "네가 나한테 진력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비겁해진 상호가 떠나버리자, 영희는 민박집에 남아 '영희 이모'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제2의 삶을 꾸려간다.
민박집 여주인은 아들이 딸린 파키스탄 이민 노동자를 받아들여 함께 산다. 심지어 그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리기까지 한다. 이 민박집에는 "인간이란 자신이 의도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장 선생, 그리고 진정한 예술세계를 꿈꾸는 화가 독고 선생이 등장한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외로운 마술사 안한얼이 모습을 나타낸다.
안한얼은 하와이에 홀로 떨어진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고국에서 떠돌이처럼 살아가는 청년이다. 그는 동굴에 살면서 바깥과 담을 쌓고 지내기도 했지만, 영희를 만나는 순간부터 강력한 예감에 이끌려 운명적인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고, 때로는 환상이 더 사실적인 것이며, 어떤 의도와 느낌을 가지면 그것이 사실로 실현된다는 믿음이 영희와 한얼을 인도하고 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이루지 못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만큼 간절하지 못했다는 반증일 뿐이다.
김지원은 상처와 치유의 아름다운 되풀이를 매우 영구적인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영희가 상호를 떠나서 한얼과 함께 새 삶을 얻었듯이,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보라'라는 소녀 역시 '버림받은 딸'이라는 처지를 혼자서 딛고 일어나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중간중간 난삽하고 다중적인 몽환 속으로 독자의 손길을 잡아끄는 작가의 몰입 때문에 다소 버거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날선 표창처럼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언어가 아니라, 상대의 겨드랑이에 부드럽게 부축의 손을 집어넣는 궁극의 언어(목소리)를 찾기 위해, '물'이라는 매개(물빛)를 가깝게 끌어당기는 이 소설을 차근차근 읽다 보면 어느새 다정하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리움, 사무침, 생(生)의 동경과 흐느낌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된다면, 그것이 이 책을 선택한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