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15년 혹은 20년 전, 나에게는 자전거에 얽힌 기억이 많다. 무슨 이유에선가 우리는 몸체가 가늘고 날씬한 자전거를 '갈비 자전거'라 불렀다. 나의 자전거는 '갈비 자전거'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자율학습을 마친 늦은 밤에는 자전거를 타고 산길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막장 채탄 광부 같았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몸이 바퀴를 굴려 만드는 둥근 빛으로 어둠의 산길을 내달리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장마가 시작되는 밤들은 퍽 곤란하였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상여가 나가던 길이었으며, 무덤이 있는 길이었으며, 가난에 겨운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타관으로 떠나가는 길이었다. 홀로 그 길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며 나는 죽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고백하자면 내 학창시절에는 내가 읽을 만한 책이 가난했던 우리 집에는 도무지 없었고, 이 책을 읽어보라며 책을 권하는 형들이나 누나들이 없었다. 내가 섬겨 모실 만한 책이, 사상의 경전이 없었다. 팍팍한 삶이 나에게는 유일한 경전이었다. 나는 뒷마당에 앉아 있거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멀리까지 나가보거나 하는 것으로 '학생주임 선생님' 같은 학창시절을 버티었다.

다시 그 시절로 회귀할 수 있다면, 당시 불안했던 내 마음의 무늬들로 미루어 보건대 '숫타니파타' 한 권을 손에 들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외롭고 곤혹스러웠던 그 시절에 대해 명의(名醫)가 건네주는 처방전이 되었을 것이다. '숫타니파타'는 초기 불교 경전이다. 그래서 붓다의 육성법문을 모은 경전이라고도 부른다.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이 많겠지만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법문이 있다.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숲속에서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나는 아직도 학창시절에 관한 꿈을 꾸면 소스라친다. 모의고사와 캄캄한 산길과 엄한 선생님. 그리고 내가 보아온 무덤과 내가 들어온 상여소리.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그리고 내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경쟁 속에 있다는 공포들. 이 '숫타니파타'는 불안한 영혼을 위로하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학창시절로부터 15년 혹은 20년을 떠나왔지만 나는 '숫타니파타'를 요즘 끼고 산다. 나의 아이가 다시 그 시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이 책을 다만 조용히 선물하고 싶다. 마음이 깊어지고 흔들림이 적어질 것이다.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