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20년 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발견된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알 화석입니다. 20㎏이 훨씬 넘는 이 돌덩이를 여행 가방에 넣어서 끌고 다니느라 출장 1주일 동안 진땀을 뺐죠."
지난 7일 서울 홍은동 한국운석광물연구소. 이 연구소 소장인 김동섭(金東燮·70)씨는 지름 20㎝ 크기의 공룡알 화석을 소중히 받쳐들고 '수집의 추억'을 전했다.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수집가다. 중점적으로 모으는 '전공' 분야는 광물과 운석. 김씨는 "지난 40여년 동안 모은 광물·운석이 120만점 정도 된다"고 말했다. 수집품들이 차고 넘쳐 이제 대부분은 경기도 일대 1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창고 30여곳에 보관하고 있다.
지하 1층 60여평 규모인 운석광물연구소에는 철제 선반마다 중국·몽골 등지에서 가져온 석질운석, 철화석, 공룡과 어류의 화석, 루비·페리도트·오닉스·자수정 등 보석 원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수집의 동기를 궁금해하자 다소 엉뚱하게도 "나눠 주려고 모은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12년 전쯤부터 부산시립해양박물관, 익산보석박물관, 청주공룡박물관 등 전국 9곳의 박물관에 수집품을 기증해 왔다. 그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자연사박물관에 광석·운석·동식물 표본 1만3000점을 기증한 공로로 김종량 한양대 총장으로부터 지난 8일 명예 이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물건들을 평생 움켜쥐고 있다가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면 수집품마다 번호라도 매겼겠지. 난 처음부터 기증하려고 모았으니 지금까지 몇 개나 나눠줬는지 나도 잘 모릅니다."
그의 수집벽은 세계 여러 나라의 담배를 모았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제기에서 고려·조선시대 엽전을 빼어내 모으기 시작한 게 수집의 시작이었다. 지난 57년 무역업을 시작한 뒤 미국·홍콩·일본·영국 등지로 출장을 다니면서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자연사박물관을 견학했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우리도 이 같은 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 광석과 동식물 표본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자연사(自然史)'라고 하면 '자연사(自然死)'를 떠올릴 정도로 이 분야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전 그때부터 훗날 박물관이 생기면 기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장 다닐 때마다 희귀한 돌덩이, 조개, 풀 등을 모았죠."
수집품을 손에 넣어 한국에 가져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30여년 전쯤 태국에서 길이 1.5m가 넘는 악어 표본을 들여올 때 김포공항 세관에 적발됐다. 그는 '동식물 표본은 반입금지이므로 태워야 한다'는 세관원들에게 '박물관에 기증할 것'이라며 한 달 넘게 설득해 겨우 가져올 수 있었다. 아내는 처음엔 '집을 팔아 잡동사니를 모아들일 생각이냐'며 반대했으나 이제는 수집 여행의 동반자가 됐다. 그는 "아내의 권유로 몇 년 전부터 세계 민속악기와 전통인형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한가운데 그의 책상 위에는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서류뭉치가 놓여 있다. 그가 직접 작성한 자연사박물관 계획서다. "한국 최대 자연사박물관을 지어 비닐하우스 창고의 수집품을 모두 전시하고 싶습니다. 모두 나누고 가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