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범·의사

가령 나, 혹은 내 가족이 매우 큰 병, 이를테면 암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해당분야에서 최고 실력을 가진 전문의에게 최상의 치료를 받게 되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치료성적을 공개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일부 공개되는 데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도가 못 된다. 보건복지부 등 의료당국도 이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정부가 대한병원협회를 통해 병원서비스 평가를 하고는 있지만, 병원들의 반대에 부닥쳐 결국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에서 각 병원의 순위를 매기고는 있지만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병원 선택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주요 병원들이 치료와 관련된 데이터를 작성해 정부 등 공식기관에 이를 보고하고 해당기관에서는 이들 자료를 분석, 병원별, 의사별 치료성적을 인터넷 등에 공개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최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주요 질병에 대한 치료성적을 공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치료성적을 공개하지 않으면 자신이 없어서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많은 병원들이 경쟁적으로 치료성적을 공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모두 환자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배려다. 물론 이러한 정보공개에 대해 의사들의 반발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정보공개 이후 의사들의 수술 후 사망률이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에서 의료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자는 발언이 있었다. 의료시장 개방이 코앞에 닥쳐 해외의 선진 의료서비스가 밀려오기 전에 국내 의료산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차대한 일로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필수적인 것이 바로 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제도가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하면, 대학병원부터 시작해 종합병원, 동네의 작은 의원이나 클리닉까지 각 의료서비스에 대한 성적표를 매기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 공동의 기구를 구성해 치료현장의 모든 데이터를 모으고 심사평가원에서 이를 평가한 후, 그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치료 성적에 따라 의료수가를 차등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치료성적이 좋으면 의료비가 절감되므로 의료수가를 높여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삭감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병원건물의 크기와 병상 수에 따라 의사의 실력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개인적인 실력 자체를 가지고 평가를 하게 된다면, 일부 개인병원에서 벌어지는 몸집 부풀리기식의 잘못된 병원경영도 없어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광범·삼성안과 원장 인천 남동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