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과거사위는 중정(中情)의 김형욱 살해 모의과정은 상세히 설명했지만, 정작 살해 현장과 시체 유기 과정에 대해선 명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살해 모의 과정이 영화를 방불케 하는 반면, 정작 살해 순간과 현장을 둘러싼 설명은 단편적인 사진 몇 장 수준이다.
①살해 현장에서 살해 도구인 권총을 잃어버렸다(?)
과거사위는 김형욱 살해에 사용된 소음 권총은 분실됐다고 밝혔다. 동유럽인 킬러 2명이 숲속에서 김형욱 머리에 총을 쏜 뒤, 기다리던 중정요원 신현진에게 “권총을 잃어버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신씨가 귀국 후 김재규 중정부장에게 보고하자 김 부장은 “소련제니까 발견돼도 괜찮다”고 했다. 지문과 혈흔이 묻어 있을 권총은 살해의 결정적 증거다. 프랑스 수사기관에서 이를 발견했다면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국정원은, 그러나 신씨가 ‘빨리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권총 찾기를 포기했다고 발표했다.
②낙엽으로 시체를 덮었다?
킬러들은 김형욱을 도로에서 50m 정도 떨어진 인근의 숲속에서 살해하고, 시체를 낙엽으로 덮었다고 국정원은 밝혔다. 신씨는 “가을이라 계속 낙엽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중정은 김형욱 살해 못지않게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의 배후라는 증거를 없애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 분명하다. 가장 중요한 시체 처리를, 매장도 하지 않고 도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낙엽만 덮어두고 끝냈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과거사위 발표에 따르면 신씨는 킬러들의 보고만 받고, 직접 확인도 않은 채 사건 현장을 떠난 것으로 돼 있다.
③살해 장소는 어디인가?
과거사위는 살해 장소를 밝히지 못했다. 파리 외곽 어느 곳이라고 했다. 신씨는 살해 모의 과정과 사후 보고에 관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을 보였다. 구체적인 건물 이름, 카페 이름까지 댔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살해 및 시체 유기 장소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살해 장소까지 차를 직접 운전했다. 그런 신씨가 끝내 입을 닫을 경우, 과거사위 발표를 입증해 줄 결정적인 증거인 김형욱 유골을 찾을 방법은 거의 없어 보인다.
④왜 김형욱은 순순히 차에 탔나?
김형욱은 이상열 당시 프랑스 공사와 신씨, 외국인 킬러 2명이 타고 온 차에 순순히 탑승했다. 김형욱은 “돈을 빌려줄 외국인 2명과 따로 가서 얘기하라”는 이 전 공사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는 것이 과거사위 발표이다.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3명이 탄 차에 당시 박정희 정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해온 김형욱이 아무런 의심없이 올라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과거사위는 이 전 공사와 김형욱이 워낙 신뢰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공사는 국정원 조사에서 살해과정에 개입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지만, 사건 내용에 대해선 진술을 거부했다.
⑤김형욱 며느리, 김재규 변호인 “믿기 어렵다”
김 전 부장의 맏며느리는 이날 “과거사위 발표는 남편(김정한씨·2002년 작고)에게 듣던 얘기와 다르다”고 했다. 김씨는 “아버님이 서울로 납치돼 피살됐거나 사우디로 끌려갔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파리서 살해됐다는 얘기는 못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님은 미국 뉴저지를 떠나 파리에서 도박을 하다 돈을 모두 잃고 스위스로 건너간 뒤 화난 상태에서 집으로 전화한 적도 있다”고도 했다. 김재규 중정부장의 변호인들도 “김형욱 사건에 대해 물었으나, 여러차례 관련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⑥김형욱 살해 19일 뒤에 박정희 시해?
김재규 부장은 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 김형욱이 살해된 지 19일 만의 일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 반대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김형욱을 제거해 놓고, 20일도 안 돼서 박 전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것이다.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형욱 회고록을 쓴 김경재 전 의원은 “79년 10월 당시 김재규 부장은 급격히 박 대통령의 신임을 잃어갔다. 박 대통령의 눈엣가시 같은 김형욱을 제거했다면 그 반대였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정우상기자 imagin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