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중 야구부 창단의 주역 장태영은 1m70이 조금 넘는 키에 시속 140㎞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며 2회와 3회 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란 별명이 붙은 것도 이때. 하지만 장태영은 4회 대회 때 호남 최고의 투수인 광주서중(현 광주일고) 김양중에 의해 꺾였다. 김양중은 4회 대회 결승에서 장태영과 맞대결을 벌였고, 연장 11회 접전 끝에 2대1로 승리하며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당시 이 경기를 지켜본 스테이트먼 미국 해군제독이 한국의 세계야구연맹 가입을 주선, 한국 야구가 국제 사회에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청룡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3연패의 주역. 1m71, 65㎏의 작은 체구였던 신인식은 동산중 3학년 때부터 고교팀 주전으로 발탁돼 홈런왕에 올랐을 만큼 뛰어난 재질을 선보였다. 1학년 때인 1955년 10회 대회에서 3연패를 노리던 인천고를 누르며 우수투수상을 탄 신인식은 1956년 11회 대회 결승전에서는 중앙고를 상대로 삼진 11개를 곁들이며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수립했다.
포수였던 백인천은 광복 후 고교생으로는 최초로 동대문 야구장에서 홈런을 기록한 주인공이다. 1959년 14회 대회에서 우수 선수로 뽑혔던 그는 1960년 15회 대회 때 이재환·오춘삼 등과 첫 우승을 일궈냈다. 백인천은 그해 11월 일본 원정을 떠나 도쿄 메이지진구구장에서 2차대전 후 두 번째 홈런을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백인천은 62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고, 2차례 퍼시픽리그 수위타자를 지냈다. 한국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엔 MBC청룡 소속으로 전무후무할 4할대 타율(0.412)을 기록했다.
청룡기 최다우승(7회)의 경북고 신화를 열었던 당대 최고의 투수. 고교 시절 뒤늦게 투수로 전향한 임신근은 1967년과 1968년 두 차례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2년 연속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경북고는 임신근, 조창수, 양창의, 강문길 등이 활약, 67년 2관왕, 68년 3관왕에 오르며 야구 명문고로 발돋움했다. 임신근은 프로야구 삼성과 해태 코치를 거쳐 쌍방울 코치로 재직하던 중 91년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최동원은 1976년 31회 대회 때 경남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팀의 5승 가운데 4승을 책임졌다. 4승 모두 완투승이었고, 그 중 2차례가 완봉. 군산상고와의 승자 결승에서는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면서 청룡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5경기에서 뽑아낸 삼진이 56개이며, 방어율은 0.24. 37이닝 동안 2점만 내줬고, 그 중 1점은 비자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