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에 성공한 유일한 사례로 주목받아 왔다. 무능한 정부 아래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식민지·반(半)식민지로 떨어진 한국과 중국의 처지에 반해 일본의 성공은 더욱 두드러지게 보였다. 일본 근대사가 메이지 유신 주도 세력과 계승자를 중심으로 서술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일본 근대의 공(公)적 세계 한편에서 '또 하나의 일본'을 구축해온 패배자들에게 시선이 향한다. 근대 일본 건설자들의 종착점이 군국주의와 태평양전쟁에 뒤이은 '패전'이었다는 인식에서 나온 반성이다.
서양 학문과 한학에 두루 능했던 석학 오쓰키 뇨덴은 일찍이 공직과 관계를 끊어버리고 평생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한 괴팍스러운 인물이다. 센다이번 고위직에 있던 아버지가 메이지 유신 후 '종신금고'형에 처해지는 등 유신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게 원인이 됐다. 1875년 문부성에서 조기 은퇴한 그는 1931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50여년간 재야에 묻혀 '무악도설' 등 일본 음악과 춤에 관한 책을 남겼다. 강연회에서 먼저 등장한 대학 교수가 한 말 가운데 틀린 대목을 강연 중에 일일이 지적하곤 해 경원시 당했다고 한다.
야마모토 가쿠마는 메이지 유신에 뒤이은 천도(遷都)로 위기에 처한 교토를 재건한 유공자로 손꼽힌다. 야마모토는 메이지 유신 정부에 패배한 아이즈번 출신이었으나 교토부 고문으로 기용됐다. 그의 건의에 따라 학교, 병원, 인쇄소, 박물관, 방직공장 등이 들어섰고, 박람회가 열려 근대 교토의 발전을 촉진했다. 하지만 야먀모토는 평생 고관대작의 자리에 나서지 않았다.
일본의 첫 본격적 소년잡지인 '소년원' 편집인이었던 다카하시 다이카는 일종의 '놀이집단'인 네기시당과 어울려 시대를 보냈다. 작가 아에바 고손, 모리타 시켄, 고다 로한 등 문인들과 구보타 베이센 등 화가 등이 어울린 네기시당에 메이지 시대는 '패잔의 시대'였다. "메이지 유신 이전의 에도 시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한 이들은 술자리와 여행을 통해 서로에게 재치 어린 농담과 신소리를 던지며 한 시대를 넘겼다. 저자는 네기시당에 유희 정신과 반(反)권력이라는 건강하면서도 동시에 병적인 탈(脫) 세상의 감각이 작용하고 있다면서 21세기 문학·예술에 깊은 영향을 줄 만한 창조활동의 원형으로 높이 평가한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메이지 시대의 기록을 훑어가며 이 시대의 정신사를 써내려간다. 낯선 사람과 책 이름으로 뒤덮인 미로를 헤쳐나가다 보면, 근대 일본의 다양한 풍경을 만날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