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언론에 건강보험 재정이 1조원을 넘는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 쓰임새를 둘러싸고 다양한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역보험 가입자의 보험료를 100% 인상해야 한다는 기획예산처의 계획이 나오면서 국민들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흑자라더니 왜 건강보험료를 올려?"라는 상식적인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런 혼란은 향후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정비하고 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커다란 장애를 조성하게 될 게 틀림없다. 외형상 건보 재정에 돈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흑자는 고사하고 적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정은 간단하다. 복지부나 건보공단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만 수입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지역가입자에 대한 국고 보조금 수조원과 담뱃값 인상으로 확보된 건강증진부담금 수천억원까지 합해서 수입금으로 계상했기 때문에 지출된 것보다 남았으므로 흑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건보 재정 흑자 발표는 일시적으로 재정적자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선 당장 정부가 건보 재정이 흑자라고 발표하자 61% 수준에 머물고 있는 "급여율을 높여라" "수가를 인상해라" 등의 주장이 봇물처럼 커지고 있다. 결국 건보 재정 흑자론은 건보 재정 안정화 의지를 약화시키고 제도개선 작업을 지지부진하게 만들 뿐 아니라 건보제도 참여자들의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건보 재정 건전화 특별법이 2006년도에 만료되어 지역보험 급여액의 40~50%를 국민 세금에서 지원해 줄 수 없다는 데 있다. 복지부와 일부에서는 이 법을 개정해서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받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지역가입자 중 200만 가구가 보험료를 연체하고 있는 조건에서 일정한 국고 지원이 없을 경우 건강보험체계의 정상적 운영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폭증하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의료비 폭증 현상을 보자. 의약분업 이후 매년 30%씩 폭증하던 극빈층에 대한 무료 치료비가 2001~02년도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한동안 정지 상태에 있다가 최근에 다시 폭증세로 돌아섰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무료치료에 매년 2조5000억원이 들고 건보의 지역보험에 1조5000억원 이상의 재정이 투입된다면 약 4조원의 재원이 매년 빈곤층의 의료비 지원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빈곤층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빈곤층 대책에 추가재원 확보가 시급한데 폭증하는 의료비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내의 경제부처에서조차 이의제기가 강력하게 나오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차상위 계층 의료비 지원을 위해 건보료 100%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건보제도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각 주체는 국민들의 불만과 요구사항에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준비 안 된 의·약분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의료비 폭증, 국민 부담과 불만 증가를 가져왔다. 또 약품 성분시험 미비, 불합리한 수가체계, 원가분석 등 약가(藥價) 정비를 위한 기본작업 결여, 국민건강의식 발전을 위한 광범위한 홍보 부족, 운영주체의 관료적 태도 등이 문제점으로 거론됐지만,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건보제도를 관리하는 당국과 참여하는 각 주체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흑자론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적당히 덮어 국민 부담으로 떠넘길 것이 아니라 당면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