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역사는 아직도 뜨거운 현재다. 학계에선 10년이 넘도록 논쟁 중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을 점령해 착취했다는 ‘수탈론’과 식민지 기간 조선은 괄목할 근대적 경제발전을 이뤘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립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자유롭진 못하다. 정치권은 최근 대통령 산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발족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친일 문제만 나오면 서둘러 재단하고 판결을 내려 한다.

이것이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것인지, 역사적 사명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국민들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진실은 아마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정직한 태도는 판단을 앞세우기보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해하기에 앞서 판단을 유보한 것이야말로 토크빌이 미국사에 정통하게 된 이유"라고 했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친일'에 흥분하는 당신은 그 시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책은 '친일 언론의 본산을 파헤친 최초의 연구'다. 일제시대 언론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민족자본을 바탕으로 한 민간지와 경성일보(일어)·매일신보(한글)·서울프레스(영문)의 3개 총독부 기관지다.

그동안 민족운동사의 일환으로, 혹은 친일 언론의 한 부분으로 조선·동아일보를 연구한 경우는 많았지만, 정작 친일 언론의 본산인 3개 '총독부 기관지'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일제시대 경성일보와 매일신보는 조선·동아 등 민간지에 비해 규모도 방대했고 영향력도 컸던 신문이었다. 총독부는 이들 신문의 사장 임명을 비롯해 인사와 경영 전반에 걸쳐 직접·간접으로 간여했다.

사이토(齋藤實) 총독은 “(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은 총독부 내부의 총감이고, 경성일보 사장은 (총독부) 외부의 총감이다”고 말했다. 이들 신문은 ‘언론 총독부’였다.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의 역대 일본인 사장들. 이들은 식민지 조선의 '언론 총독'들이었다.

일제시대 전 기간 발행된 유일한 한글 신문인 매일신보는 더욱 중요하다. 매일신보는 1920년 조선·동아일보가 창간되기 전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고 1940년 조선·동아가 폐간된 이후 유일한 한글 신문이었다. 한국문학사에 기록되는 작품의 발표무대이기도 했다. 일제시대 국문학사는 이 신문을 보지 않으면 제대로 연구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 언론사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한 저자(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경성일보와 매일신보의 고위 경영진과 기자들이 누구였는지, 조선인과 일본인의 소유지분이 얼마였는지 실증적인 자료 발굴과 25년간의 연구를 통해 분석했다.

신문 검열, 영화와 레코드 음반까지 사전에 허가를 내렸던 총독부 경무국 도서과 검열관들의 인적사항도 처음으로 밝혔다. 그동안 애써 외면했던 한국 언론사의 반쪽을 실증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한 노작(勞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