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추진했던 유전사업의 철도공사 내부 지휘자가 당시 철도청장이었던 김세호 전 건교부 차관이었던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짐에 따라 정치권 외압 수사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그동안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 등 의혹을 받아온 정치인과 철도공사측은 유전사업의 ‘주역’으로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과 왕 본부장에게 ‘실세’를 팔고 다닌 코리아크루드오일(KCO) 전·현직 대표 전대월씨와 허문석씨를 지목해왔기 때문이다.
김 전 차관은 그동안 "모른다" "사업초기 보고만 받았을 뿐"이라며 사업 연루 의혹을 부인하고 왕 본부장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일개 국장급이 수백억원대 국책사업을 혼자 다하냐'는 의혹에 대해 왕 본부장은 "내가 몸통"이라며 윗선을 철저히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11일 발부된 김 전 차관의 구속영장을 보면, 김 전 차관이 사실상 유전사업의 관리감독자였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김 전 차관과 왕 본부장이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온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유전사업을 제안하고 급히 추진토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권 인물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치권 등을 통해 외압 대상으로 지목된 정치권 인사는 그리 많지 않다. 이광재 의원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 등이다.
특히 김 전 차관은 이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의원을 4∼5차례 만난 적은 있지만, 유전사업과 관계가 없는 만남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져, 이 의원과 친분이 있음을 시인했다.
김 전 차관이 왕 본부장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자신이 직접 산자부 장관에게 사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는 수사 내용은 유전사업에 철도공사는 물론 청와대, 산자부 등이 관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검찰은 신광순 전 철도공사 사장을 구속하면서 유전사업이 노 대통령 러시아 방문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 대통령 '방러'에 맞춰 범정부차원에서 추진된 사업이라는 그간의 의혹 제기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시사했다. 실제로 철도공사 내부자료들에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건교부, 통일부, 산자부, 국회 산자위 등이 유전사업에 개입했음을 알리는 내용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에 따라 산자부와 외교부 등 정부 부처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동안 감춰져있던 유전사업의 '비밀'이 하나씩 공개될 전망이다. 검찰은 또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청와대의 보고 누락과 감사원의 부실감사 등의 배경도 함께 밝혀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부처가 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며 야당 등의 의혹 제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강훈기자)